한국통신株 입찰보증금 분석-부동자금인가 여유자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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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투자인가 투기인가.」 한국통신 주식 입찰에 몰려든 돈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이번 입찰을 계기로 시중에 부동(浮動)자금이 많다는 사실이 입증됐으며,이 돈들은 기회만 오면 부동산 투기등으로 이어질 소지가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입찰과정에서 나온 여러가지 수치를 실증적으로 뜯어 보면 이런 해석은 지나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실제로 입찰과정에서 한 사람이 투자의사를 밝힌 돈의 규모가 평균 2천만원 정도인데다,낙찰받은 개인투자자들이 내야 할 돈도2천5백만원 안팎이라 과연 이 정도를 「부동자금에 의한 투기자금」으로 단정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낳게 한다.
한국통신 주식 입찰과정에 숨은 의미를 분석해본다.
◇투자인가 투기인가=개인투자자들의 경우 모두 65만7천명이 1인당 평균3백60주꼴인 2억3천7백70만주를 사겠다고 희망했다.한 사람이 약 2천만원씩을 투자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중 낙찰자를 보면 1인당 평균 5백9주,2천4백67만원어치(주당 4만8천4백74원)씩을 배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7~10일 국민은행에 들어온 입찰보증금은 약 1조4천5백억원이고,이달들어 첫 열흘동안 시중은행의 요구불 예금은 1조2천억원 늘어났다.입찰보증금도 요구불예금인 점을 감안하면 2천5백억여원이 빠진 것이다.
10일 현재 양도성예금증서(CD)나 표지어음등 은행들이 취급하는 각종 채권의 잔액도 지난달 말에 비해 약5천억원이 줄어든반면 은행의 가계대출은 오히려 2천4백억원이 늘어났다.기업들이쓰는 당좌대출은 이달들어 1~5일 2조6천억원 이 줄어든 반면6~10일은 2조원이 증가했다.
이런 점만 보면 기업이나 개인들이 한국통신 주식을 사기 위해다른 곳에 넣어뒀던 여유 돈을 옮겼을 뿐 아니라 은행등에서 돈을 빌리기도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한통 주식입찰 과정에 투기성 요인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무리란 지적도 만만치않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물론 투기적 요인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일부 소수가 거액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많은 개미군단이 소액씩을 투자했기 때문에 부동자금에 의한 「투기」라기보다는 여유자금에 의한 「투자」로 봐야 한다』고 진단 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나=정부가 1백%를 갖고 있던 한국통신주식은 96년까지 49%를 팔게 돼있다.바꿔 말하면 이번 주식매각이 경영권 확보와는 관계가 없다.따라서 이번 입찰 열기는 財테크 차원에서 이해되는게 바람직 하다는 것.그 러나 전문가들은 『다른 마땅한 투자수단이 없다는 점』을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고 있다.
부동산은 덩치가 커 위험 부담이 높은데다 소액으로 굴리기가 마땅찮고,직접 주식을 사기에는 왠지 겁이 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은행에만 맡겨놓기는 만족할 수 없어 고민하던 차에 모처럼 좋은「호재(好材)」가 나타났으니 과열이 안되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 상당수 응찰자들의 지적이다.
◇법인 전문가들이 개인에게 졌다=개인투자자들의 평균 낙찰가는주당 4만8천4백74원으로 법인(5만2천37원)에 비해 3천5백63원이 낮았다.
법인의 경우 개인 투자자들에 비해 정보량이 많고,특히 財테크를 위해 전담부서까지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외의결과다. 물론 일부 법인들의 「꼭 사야겠다」는 의지가 가미되긴했겠지만 한편으론 기업들이 개인 투자자들의 財테크 실력에 못미치는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자금시장에 어떤 영향이 미칠까=오는 16~18일 사흘동안 국민은행에 들어오게 되는 주식대금 납입금은 모두 4천2백78억원.이 돈은 국고로 환수돼 시중에서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금융권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가용자원이 줄어드는 셈이다. 일부 은행들은 입찰신청이 시작된 7일을 전후해 돈 구하기에비상이 걸렸고,공교롭게도 14일 회사채 유통수익률이 올해 최고수준으로 뛰어 우려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정도로 금융시장이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란 게금융계의 지배적인 진단이다.
4천억원이라 해봐야 총통화의 0.3% 정도에 불과하고,또 이돈이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시장으로 풀려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오히려 물가 안정에도 다소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閔丙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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