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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보다 1조 배 빠른 속도 정지화면으로 잡는 '아토초' 관찰 기술 국내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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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날아가는 총알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게 찍으려면 마이크로(100만 분의 1) 초(秒) 속도로 셔터가 여닫히는 초고속 카메라가 필요하다. 사람의 눈으로는 1000분의 1초 순간의 움직임 정도만 식별할 수 있다. 아주 빠른 물체의 움직임을 정지 화면처럼 잡으려면 카메라는 최소한 그 움직임보다 더 고속이어야 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의 남창희 교수와 김경택 박사는 물질의 원자와 같은 극미세 세계에서 초고속 카메라 역할을 할 200아토(아토:100경 분의 1)초 X선 펄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4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의 물리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 11월 30일자에 게재됐다. X선 펄스 한 개는 철(凸)자 형태로, 연구팀이 만든 펄스는 철(凸)자의 위로 튀어나온 부분의 폭을 빛이 지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200아토초다. 펄스 한 개가 카메라로 치면 한 번의 셔터 속도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X선 레이저의 빛이 퍼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으로 아토초 펄스를 만들었다. 남 교수는 "이 방법을 쓰면 100아토초 펄스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도 화학반응이나 원자의 세계 연구에 쓰이는 초고속 레이저 펄스를 만드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 이번 기술을 활용하면 수소의 원자 안에서 전자가 움직이는 과정까지 정지 화면을 찍어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수소의 전자가 핵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0아토초다. 아토초 같은 초고속 레이저로는 화학반응이 일어날 때 분자가 서로 결합하는 순간 등 원자 내부 움직임까지 관찰할 수 있어 각국의 개발 경쟁이 뜨겁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펄스=빛이 깜박거리면서 만드는 철(凸)자 형태를 말한다. 디지털 광통신을 할 때 '0'이나 '1'의 정보를 싣는다. 표준시를 만드는 원자 시계도 이 펄스를 활용한다.

◆아토=아토(atto)는 소수점 이하 '0'이 17개인 100경 분의 1을 뜻하는 접두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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