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 '교육결단'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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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 고1(만15세) 학생들의 과학 성적이 3년 만에 추락했다. 2003년 세계 4위에서 11위로 곤두박질한 것이다. 특히 최상위권(상위 5%) 학생들의 과학 성적은 더 떨어져 세계 57개국 중 17위를 기록했다. 3년 전엔 2위를 차지했으나 이번에 무려 15계단이나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일 OECD 회원 30개국 등 총 57개국이 지난해 참여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 결과를 공개했다. 과학 과목에서 2000년 세계 1위였던 한국은 2003년 4위에 이어 2006년 11위를 기록했다. 과학 과목에서 1위는 핀란드였으며, 한국은 아시아에서 홍콩(2위).대만(4위).일본(6위)보다 처졌다.

<관계기사 10면>

이번 평가에서 처음 실시된 과학 과목 최상위 수준(수준 6)에 도달한 학생 비율에서도 한국은 1.1%로 세계 18위에 그쳤다. PISA 테스트에 참여한 전국 154개 고교 5000명 중 불과 50명만이 과학에서 최상위 성적을 나타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 10월 대학 총장들과의 오찬 때를 포함해 기회 있을 때마다 'PISA'에서 1~4위를 차지한 수치를 인용했다. 노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평준화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졌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과학 과목의 추락이 극명하게 드러난 이번 PISA 결과는 한국 과학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최상위권 학생의 성적 하락은 고교 평준화 제도가 한 원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세정 전국자연과학대 학장협의회장(서울대 물리학과)은 "한국 학생들의 최상위권 성적이 특히 뒤떨어지는 것은 평준화 교육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오 회장은 "잘하는 아이들은 따로 모아서 교육을 시켜 더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평준화 교실에서는 잘하는 학생들의 능력이 키워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평가에 참여한 고1 학생들은 2001년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을 받은 학생들이다. 이 때문에 학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선택과목 중심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학생들은 '과학, 수학, 기술.가정' 중에서 과목을 선택하도록 돼 있다. '음악, 미술, 체육'은 독립선택과목군인 데 반해 과학은 수학, 기술.가정과 묶어 그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어렵게 생각하는 과학 과목 선택을 상대적으로 기피해 왔다.

이런 과학 과목 홀대 현상은 새로운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2012년 이후에도 이어진다.

PISA는 과학 이외에 읽기, 수학 과목에서도 실시됐다. 한국의 읽기 부문은 2000년 6위에서 2003년 2위로 올랐고, 2006년엔 1위를 차지하면서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추이를 보였다. 수학은 2000년 2위, 2003년 3위에 이어 2006년엔 4위로 평가됐다. 과학 성적의 추락만 두드러진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사교육을 많이 받는 읽기와 수학 성적은 유지되고, 사교육이 덜한 과학은 추락했다"며 "이는 공교육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땅히 배워야 할 과목을 등한히 하게 하는 선택형 교육과정에 대한 개혁과 학교 교사들에 대한 기 살리기 등 총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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