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뉴스] 감독 당국 한마디에 ‘찔끔’ 슬그머니 금리 낮춘 국민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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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국민은행이 3일 정기예금 금리를 슬그머니 낮췄습니다. 지난달 21일 대표적인 정기예금 상품인 ‘국민슈퍼정기예금’ 이자를 시중은행 최고 수준인 연 6.2%로 올렸다가 이날 연 6%로 되돌린 것입니다. “예상보다 일찍 목표를 달성해 금리를 내린 것”이란 게 국민은행의 설명입니다. 조금 높게 운용했던 우대금리를 시장 상황에 맞게 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은행들의 시각은 다릅니다. ‘무리한 예금 금리 인상 경쟁이 은행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금융감독 당국의 경고에 찔끔했다는 것입니다. 국민은행이 이자를 올린 뒤 7영업일 만에 3조원을 끌어 모으자 감독 당국의 ‘심기’를 거슬렀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도 잇따라 연 6%대 특판 정기예금을 내놓으며 출혈 경쟁에 나섰기 때문이죠.

국민은행은 덩치가 큰 만큼 한번 움직이면 시장이 출렁댑니다. 이 은행이 공격적인 금리 경쟁에 나섰다가 감독 당국의 경고를 받고 원 위치한 게 처음은 아닙니다. 최근 중소기업 대출이 대표적입니다. 국민은행은 올 3분기에 중기 대출을 3조4000억원이나 늘렸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달에는 신규 중기 대출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웬만하면 적용해 주던 금리 할인을 선별적으로 해 주기로 한 데 이어 대출 중단이라는 극약처방까지 내린 것이죠.

은행 업계는 국민은행의 자금 조달 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이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감독 당국의 중기 대출 쏠림 현상 경고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감독 당국의 말 한마디로 ‘냉·온탕’을 오가는 영업에 고객만 골탕을 먹는다는 앓는 소리도 나옵니다.

경기도 화성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A씨는 “올여름만 해도 대출 금리를 깎아 줄 테니 우리 은행 돈 좀 써 달라고 통사정하던 은행들이 정작 돈을 빌리려고 하니 얼굴을 싹 바꾸었다”고 말했습니다. 중소기업도 몇 년 앞을 내다보고 설비투자와 자금조달 스케줄을 짭니다. 감독 당국 눈치를 보며 마음대로 대출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상황에선 어떤 기업도 선뜻 투자에 나서기 어렵습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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