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판 휴대폰의 생로병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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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2000만 대 새로 탄생 1000만 대는 ‘무덤으로’ #140만대는 최고 1만원에 해외 수출 #수거된 단말기는 녹여서 금·은 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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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기도 사람의 일생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한다. 한 해 2000만 대가 국내에서 태어나고, 낡거나 고장 나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가 불가능하고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중증 휴대전화기’는 안락사시킨다. 이때 몸 안에서 떼어낸 금·은·동·코발트 같은 쓸 만한 ‘장기’는 재활용된다.

이런 금속을 빼내기 위해 휴대전화기를 산산조각 내는 업체는 전국에 다섯 군데 있다. 충남 천안의 리싸이텍코리아에는 해체될 휴대전화기가 10만여 대 쌓여 있다. 여기서 나온 중고폰 조각들은 울산의 고려아연 공장의 용광로에 들어가 제련 과정을 거친다. 박쇠형 리싸이텍 상무는 “무게 100g의 단말기 한 대당 돈이 되는 금속 3g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일부 중고 휴대전화는 해외로 입양돼 새 주인을 만나기도 한다.

휴대전화 생산업체와 이동통신업체들이 이 같은 휴대전화기 재활용 사업에 팔을 걷었다. 연간 1000만여 대씩(추정) 버려지는 중고 단말기에 납·수은 등 유해 금속이 들어 있어 방치하면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재활용을 할 경우 원자재를 그만큼 아낄 수 있다.

국내 휴대전화기 소비자는 보통 2∼3년마다 단말기를 바꿔 때론 멀쩡한 휴대전화도 버려진다. 수명이 다 돼서가 아니라 패션이나 기능이 뒤처져서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배출된 중고폰은 1400여만 대에 달한다. 이 중 이동통신 업계가 수거한 중고 단말기는 전체의 24%수준(340여만 대)에 불과하다.

이렇게 모인 중고폰은 먼저 건강검진을 받는다. 쓰지 못하는 제품(수거폰의 30%)은 제련공장으로 보내지고 그래도 쓸 만한 것은 후진국에 수출(40%)된다. 이통사에서 일시적으로 빌려주는 임대폰(30%)으로도 이용한다.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의 송효택 정책지원팀장은 “휴대전화 한 대당 제련 비용은 600원 드는데, 거기서 나온 금속의 값어치는 450원 정도”라고 말했다. 모자라는 돈은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메워 준다. 경제성은 없지만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중고품 수출은 짭짤하다. SK네트웍스 양태성 통신지원부문 대리는 “매달 6만 대의 중고폰이 대당 2000~1만원에 우즈베키스탄 등 해외에 팔린다”고 소개했다.

한편 정통부와 이동통신 3사는 지난달부터 중고 단말기 수거 캠페인인 ‘기부폰 이벤트’를 열고 있다. 연말까지 전국 이통사 대리점이나 대형 마트에 중고폰을 가져온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해 자동차·노트북 등 푸짐한 선물을 준다. 참가자 전원에게 문자 메시지 100건을 쓸 수 있는 혜택도 준다. SK텔레콤은 이와는 별도로 지난달 수도권 및 6대 광역시의 초·중학교를 대상으로 중고폰 수거 행사를 열었다. 김도영 SK텔레콤 사회공헌팀장은 “1433개교에서 13만2500여 대를 수거했다”고 말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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