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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군 순항함대 '함상 리셉션' 가보니…용왕님도 놀랄 요리 퍼레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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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중앙지난 27일 오전 샌페드로 항에 입항했던 대한민국 해군 순항훈련함대(사령관 임철순 소장)가 2박3일의 일정을 마치고 하와이로 출항했다.

내년 임관하는 제 62기 해군사관생도 등 610여 명으로 구성된 훈련함대는 117일 동안 함상생활 적응 전투력 향상 선진 해군 문화 체험을 위해 지난 8월 말 진해항을 출발해 아시아 유럽 미주지역 등 9개국 12개항을 순방 중이다.

한인 초청 리셉션 행사 후 주방을 정리하고 있는 순항훈련함대 조리병들.

훈련함대는 도착하는 기항지마다 귀빈 초청 함상오찬을 열고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에서는 한인 환영 리셉션을 베푼다. 한국의 전통적인 민속음식을 주요 메뉴로 한 오찬과 리셉션은 한국 문화와 한국 음식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리는 외교적 중요성도 적지 않다.

지난 28일(수) 저녁 훈련함대는 6.25참전용사와 한인들을 샌 페드로에 정박한 최신예 전투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과 군수지원함 '화천함'으로 초청해 함상 리셉션을 베풀었다.

그 동안 수많은 대한민국 남성들로부터 전설적으로 들어왔던 군대의 주방을 직접 방문하는 감회는 컸다. 물론 순항 훈련함대라는 특수함이 있지만 여전히 군대는 군대이다. 군함 역시 배인지라 '충무공 이순신함'과 '화천함'도 대형 유람선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짠밥을 쪘다는 취사병들의 이야기만을 상상하다가 직접 견학한 함상의 주방은 지나칠 만큼 럭셔리했다. 우선 특이한 조리기구가 시선을 끈다.

"두 대의 군함에서 600여 명이 동시에 식사를 하려면 웬만한 화력이나 조리 기구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죠. 저희 주방은 대형 특수 스팀 조리기구로 짧은 시간 내에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양병진 조리사(31. 중사)가 삽 모양의 조리 기구로 음식을 휘저으며 말한다.

LA를 찾은 한국 해군 순항훈련함대의 최신예 전투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과 군수지원함 ‘화천함.’(왼쪽) 먹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예쁜 카나페들. 입항 시의 리셉션에 올리는 메뉴 중 하나다.(오른쪽)

대외 연회가 잦은 충무공 이순신함과 이를 지원하는 화천함에는 이학권 식사관 상사를 비롯해 모두 20여 명의 조리사와 조리병이 있다. 나머지 식솔들의 삼시세끼에 야식까지 무려 4끼를 챙겨 먹이기 위해 식사 준비하고 먹고 치우면 또 다음 끼니를 준비할 시간이 되니 말 그대로 밥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는 셈이다.

소가 발을 담근 것처럼 묽은 쇠고기 국만을 기억하고 있는 당신이 요즘 군대의 식사에 초대된다면 어쩜 감동의 눈물을 흘릴 지도 모른다. 11월 넷째 주 화요일 훈련함대의 식단을 살짝 엿볼까.

콘 플레이크와 식빵 잼 치즈 야채샐러드 우유로 균형 잡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점심 때는 부대찌개와 소 갈비찜에 가지 나물 총각김치 파김치가 부식으로 제공된다.

저녁에는 닭고기 무국과 소시지 야채 볶음 오이 무침에 밑반찬으로 김치와 깻잎 장아찌를 준비한다. 이날의 야식은 담백한 맛의 물국수. 간식으로는 전설적인 초코 파이는 물론이고 건빵 참치크래커 웨하스 등이 제공된다고.

LA를 찾은 한국 해군 순항훈련함대의 최신예 전투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과 군수지원함 ‘화천함.’(왼쪽) 먹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예쁜 카나페들. 입항 시의 리셉션에 올리는 메뉴 중 하나다.(오른쪽)

각 기항지의 특산물을 이용한 특별식도 준비한다. 스테이크 파티 랍스터 데이 로우 피시 파티 등 테마가 있는 연회는 늘 수평선만을 바라보던 훈련함대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물론 저희 훈련함대의 1인당 부식비는 육군 부대보다 조금 많이 책정되긴 하지만 요즘 군대의 음식은 참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사회에서보다 오히려 잘 먹는 경우이고요." 리셉션에서 토속 음식 조리를 맡은 조리사 홍준학 하사의 말이다.

음식 찌꺼기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환경 운동은 훈련함대 내에서도 실시되고 있다. "용왕님은 잔반을 싫어하십니다. 잔반통 휴가중! 잔반은 물론 국물도 버리지 못합니다." 곳곳에 걸려 있는 안내문들이 선진 해군의 환경 사랑을 엿보게 한다.

기항지에 도착하면 조리병들은 앞으로 10~20일 동안 뭍에 오르지 못하며 항해를 하는 동안 훈련함 대원들이 먹을 식재료들을 마련하기 위해 마켓을 방문하기도 하고 각 기항지의 대도시로 나가 그 지역의 특별 요리들을 맛보기도 하느라 다른 보직보다 몇 배는 더 바쁘다고 한다.

"먹어봐야 맛을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기항지에 도착하면 현지의 명물 요리들을 꼭 먹어보려 애쓰는 편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스페인 해물 요리인 빠에야를 맛봤고 이탈리아의 라스페치아에서는 해물 파스타를 시식하기도 했죠."

올해로 해군 입대 23년째에 들어서는 이학권 식사관 상사는 요리하기를 좋아해 조리병을 지원했다. 교육사령부에서 3개월 간의 조리고등 과정을 마친 그는 요리 학원까지 다니며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모든 요리의 조리 기능사 자격증까지 따냈다.

참치회.(왼쪽) 야채잡채. (오른쪽)

순항함대가 117일 동안 각 기항지를 순회하는 동안 책정된 식사비는 총 60만 달러. 입이 무섭긴 하다. 식재료를 보관하는 냉장고를 들여다보니 대형 식당보다 규모가 크다. 식단은 이학권 식사관 상사를 중심으로 20여 명의 조리병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다.

아무래도 육지에 있을 때 보다는 야채들의 신선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기항지에 도착한 날로부터 며칠 동안은 샐러드 등을 많이 준비한다. 유산균과 비타민 C가 풍부한 김치는 배추 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깍두기, 백김치 등 종류도 다양하게 담근다.

“해군을 제대하면 글쎄요, 대량 식사 준비 경험이 많으니까 레스토랑을 열 생각도 없지 않습니다.” 리셉션 요리의 모양새를 가다듬는 그의 손길이 여성보다 더욱 섬세하다.

많은 사람이 식사하는 함상요리는 특수기구를 사용해서 만든다.

지난 28일(수)에 열렸던 함상 리셉션. 시꺼먼 조리병들이 뭐 얼마나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했던 오만함은 상차림을 보고 꼬리를 감추었다. 저녁 시간 바닷가의 쌀쌀한 날씨로 따뜻한 국물 생각이 간절할 것을 미리 꿰뚫어 보았는지 어묵 탕이 상을 마련한 것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국물도 다시마와 무를 잘 우려내 개운하고 감칠 맛이 넘쳤다.

오색의 야채들을 풍부하게 사용한 잡채, 신선한 참치 회도 인기가 높았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딱 맞는 간에 잘 숙성된 포기 김치를 정갈하게 썰어 놓은 솜씨는 살림 잘 하는 주부들을 한 수 앞서는 수준이다. 그 외 닭 튀김, 탕수닭, 불고기, LA 갈비, 무 버섯 콩나물 등 3가지 나물, 야채샐러드, 파전, 볶음밥으로 차린 잔치 상에는 정성이 가득하다.

리셉션의 칵테일 바텐더 역시 조리병들로 구성됐다. 붉은 빛깔의 슬로진을 건네는 조리병의 머리가 빡빡 머리 군인 아저씨만 상상해 오던 것에 비해 좀 길다 싶다.

“요즘에는 머리를 그 정도 길어도 되는 가봐요?” “아뇨. 해군의 머리가 육군 공군보다 좀 깁니다. 비상 시에 물에 빠졌을 때 머리털을 잡고 구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세일러 복과 제복을 입은 해군과 사관 생도, 장교들의 모습이 ‘사관과 신사’의 리처드 기어만큼 멋지다.

글.사진 스텔라 박 USA중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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