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를찾아서>13."종교이념의 역사" 엘리아데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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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는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개념적인 정의는 단일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용어를 통해 인간의 문화가 지니고 있는 특정한 경험과 그 경험의 표상을 지칭하면서 그 용어를 적절한 소통기호로 사용하고 있다.그리고 그 때 공유될 수 있는 종교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인 개념은 그것이 삶이 지닌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경험된 「어떤 것」의 표상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그것을 「성」(聖)이라고 범주화한다.분명하게 사실로부터 비롯하지만 사실을 넘어서는 비일상적인 어떤 다른 것,곧 초월이나 신비나 신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의미로 수용되는 어떤 것이 다름아닌 종교라고 이해하는 것이다.물론 그러한 경험을 의식의 차원에서 구체화하지 못하고 사실에 함몰돼 살아가는 삶도 있다.그것을 「속」(俗)이라고 범주화할 수 있다.그러나 성속의 범주를 설정하는 것은 현상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가능하지만 존재론적 차원 에서는 불가능하다.왜냐하면 인간은 사실안에서 자족할 수 없는 존재,다시 말하면 사실 안에서 겪는 물음을 벗어난 차원에서 메아리하는 해답을 통해 극복하지 않고는 삶 자체를 영위할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판단을 전제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삶의 경험 양태가 그러했었다는 실증적인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현실적으로 성속의 변증법적 긴장 가운데 살고 있다.스 스로 참으로실재이기를 원하는 희구가 그럴 수 없는 상황속에서 끊임없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종교는 역사적 발전의어느 단계에 있었던 현상,그래서 보다 진보된 역사 속에서는 사라질 그러한 현상이 아니다.「성」은 참으로 실재이기를 원하는 인간의 의식구조에 내재한 요소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근원적으로 종교적인 인간(homo religious)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을 인류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실증하고자 한 책이다.따라서 이 책은 인간이 어떻게 「성」을 경험했고 그것을표상화했으며,그것이 인간의 여타 문화와 어떻게 맺어져 있고,또그러한 의식이 은폐되고 변형된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를 폭넓고,상세하게 다루고 있다.말하자면 「종교사로서의 인류사」「종교사로서의 세계사」 혹은 「종교사로서의 문화사」집필을 의도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실을 실증적으로 기술하고그 「인과적 관계」를 축으로 하여 해석하는 역사학적 방법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이 책의 제목을 『종교사』라 하지 않고『종교이념의 역사』라고 한 이유는 역사에 대한 그의 이 러한 이해가 기존의 역사적 서술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이 책에서 일컫는 「이념」이란 사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론적인 함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각 종교사,예를 들면 불교사.기독교사.힌두교사.중국종교사등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낯설고 황당하기조차 하다.
종교와 인간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근원적으로 되묻지 않고는 이책이 제기하는 문제와 그 서술내용을 쉽게 수용하 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저자는 직립원인(直立猿人)의 종교,곧 그들도인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누렸을 그들의 「구원의 논리」를 서술하고 있다.그리고 그들의 경험이 결코 우리와 단절된 것일 수 없다는 사실을 주장한다.「중심의 상징」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 책은 종교는 물론 인류의역사,그리고 인간과 삶을 근원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정치.경제.군사.기술 그리고 예술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그러한 모든 삶의 현상들이 지니는「구원론」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철저히 재평가하게 하는 것이다. 세권으로 된 이 책은 1권에서 구석기시대로부터 이집트.베다.이란의 자라투스트라,고대 이스라엘,그리고 디오니소스에 이르고 있고,2권에서는 고대 중국으로부터 불교,로마 유대교.기독교등을 시대의 변천과 주제에 따라 서술하고 있으며,3권 에서는 고대 유라시아,이슬람.유대교.기독교의 전개,중세 유럽,티베트에 이르고 있다.각 종교의 역사와 보편적인 종교적 상징이 종횡으로 교차되면서 모든 문화현실과의 연계마저 서술하고 있는 이책은 교향곡의 악보를 보는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참으로 실제이고자 하는 인간의 희구가 온갖 모습으로 드러나면서 그 총체성이종교라는 문화로 응집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불행히도 저자의 사정에 의해 1천4백14면이나 되는 이 거작은현대의 종교를 포함하고자 했 던 본래의 집필의도를 이루지 못하고 중세에서 중단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만만하지 않다.
저자의 상상력이 사실을 서술하는 그의 인식의 논리를 넘어서고있다는 언급은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 비판이다.분명히 이 책은독자로 하여금 시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을 독특한 정서를 가지고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조망할 수 있게 해 준다.그러나 엘리아데는 학문성이 창조성을 대가로 지불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근원적으로 회의하고 있다.학문이 인간의 영성을 깨우쳐 당대에 적합성을 지니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일일 뿐이기 때문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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