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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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드디어 봄이고 입학식날이었다.
비록 세상에서 말하는 일류대학은 아니었지만,게다가 1차에서 떨어지고 2차에서 겨우 합격한 대학이었지만,하여간 그날부터 내가 공식적으로 대학생이 되는 날이었다.
『미안해요.엄마,이거 내가 서울대학교 같은 데 떡 들어갔어야엄마가 동창회나 계같은 데 가서 큰소리칠 수 있는건데.』 집을나서기 위해 내가 운동화 끈을 매는 걸 보고 있던 어머니에게 내가 그랬다.내 말은 거의 진심이었다.
『무슨 소리니.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으면 그게 서울대학이지.엄만 우리 달수가 신통해 죽겠는데 뭐.너 이거 가져가.입학식이라는데 돈 쓸 일이 있을지 아니.』 어머니의 말은 반쯤만 진심일 거였다.어쨌든 나는 어머니가 내미는 만원짜리 두장을 받아서 청바지 주머니에 꾸겨넣었다.버스 정거장을 향해 걸으면서 어쩐지 조금은 우울했다.
세상에 누가 시험점수 가지고 사람을 등급 매기는 제도를 만들어낸 건지 알 수 있다면 나는 그이의 무덤에 찾아가서라도 발길질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그이만큼 많은 젊은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안겨준 사람이 또 있을까.그 사람만큼 많은 젊은이들의 시퍼런 세월을 엉망으로 망가뜨린 이가 또 있을까.
모든 식이 그렇듯이 입학식이라는 것도 지루하기만 했다.학과별로 줄세워서 이름을 부르고 머리수를 세고 한 다음에 머리가 하얀 총장님의 말씀을 들었다.끝날듯 끝날듯 하면서 또 이어지고 이어지고 하는 것도 고등학교 조회시간 교장선생님의 훈시와 비슷하였다. 『…여기 모인 신입생 여러분 모두는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큰 좌절을 맛본 사람들입니다.여러분은 애당초 여러분이 들어가기를 원했던 1차 대학에 응시해서 떨어졌기 때문에,그래서우리 학교에 오게 된것입니다.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됩 니다.
또 숨기려고 해서 감춰지는 일도 아닐 것입니다.나는 우선 그점에 대해서 신입생 여러분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실패를 모르고 좌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크게 되는걸 나는 아직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물론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 모두가 그걸 모르는 사람들 보다 더 잘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좌절 과 실패의 의미를 깨닫고 그것들을 딛고 일어선 사람은 장차 더 큰 그릇이될 수도 있다는 이야깁니다.나는 그런 뜻에서 오늘,여러분이 특별히 2차대학인 우리 학교에 입학한 것에 대해서 축하의 말씀도아울러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입학식을 마치고 수강신청 양식지 따위들을 받아들고 교문을 나서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탁 쳤다. 『무슨 과야,멍달수.』 돌아보니 계희수였다.낯선 얼굴들틈에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그 애를 만난 것도 몹시 반가웠다. 『웬일이야 계갈보,니가 여길 합격했단 말이니?』 『얘누가 듣겠어.대학생이 누가 그런 저질스러운 말을 쓰냐구.』 그러면서 희수도 반가운 기색이었다.나는 희수를 계속 놀려댔다.
『그럼 이 학교두 기부금 입학제가 있는 거야?… 넌 무슨 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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