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상>쌀값,옛날과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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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해마다 이맘때면 정부가 사들이는 쌀의 값과 양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나라가 열병을 앓곤 한다.특히 올해는 정부가수매가를 동결하고 수매량도 작년보다 30만섬 줄이기로 함에 따라 농민단체와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은 물론 여당조차 불만을 표시하고 있어 국회동의에 이르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쌀수매와 관련한 정부 보조를 내년부터 10년간 3분의2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어 정부수매의 축소라는 기본적 추세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경 제적으로나정서적으로 쌀이 갖던 의미가 워낙 커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쌀은 오래전부터 가격의 척도(尺度)로 쓰여왔다.우리나라에 도시시장이 처음 열린 것은 신라 소지왕(炤知王)12년(서기490년)의 일로 알려져 있는데 신라에서 화폐역할을 한 것은 패미(米),즉 도정(搗精)한 쌀이었다.
통계청이 얼마전 펴낸 『통계로 본 개화기(開化期)의 경제.사회상』은 근대적 의미에서 쌀의 교환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자료를 담고 있다.
1898년 독립신문에 실린 서울 물가에 따르면 당시 쌀 1등미 1섬이 8원에 팔렸다.같은 시기 달걀 1백개가 0.8원,쇠고기 1근은 0.12원으로 되어 있다.1섬이 1백44㎏이므로 요즘같은 80㎏ 한가마니로 따지면 약 4.44원으 로 쌀 한가마니가 달걀 5백50개 남짓,쇠고기 37근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지난 10월말 현재 서울 물가(상공회의소 조사)는쌀값이 일반미 소매 한가마니가 13만원,달걀은 10개에 9백원(갈색특란),쇠고기는 5백g에 8천원 (한우정육)이므로 같은 단위로 셈해 보면 쌀 한가마니로 달걀 1천4백40개정도,쇠고기는 14근 가까이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물론 1백년전상황과는 아주 다른 소득수준과 기호변화등을 생각할 때 단순비교에는 무리가 있지만 나름 대로 흥미있는 변화를 읽게 해준다.
장기적으로 농산물시장 개방이라는 대세앞에 큰 변화를 겪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쌀값을 생각하며 옛일을 되짚어봤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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