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정부 위에 국민이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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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지만 빈 선물상자일지라도 자세히 보아야 한다. 잘 엮어 보면 후보의 색깔이 보이기 때문이다. 5년 더 후회하지 않으려면 후보의 경력에서 나오는 그의 실체에 착목(着目)해야 한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가 하는 정치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난장판에 정치철학이 뭐냐고 삿대질할 분이 많으리라. 그러나 후보 때 어떤 말을 했던 간에 대통령이 일단 되면 그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성향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다. 선거기간 중에서는 이런저런 몸짓으로 아부를 연출하지만, 일단 대통령이 되는 순간 그는 자신 이외에는 실질적인 통제 기제(機制)가 없는 상황에서 ‘본성’을 드러낼 것이다. 그 본성이 우리가 보통 ‘정치철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필자는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국민이 성숙한 구성원으로서 역할하려면 한 가지 큰 지평의 변화가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국민이 위로 가게 행정은 아래로 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수천 년 동안 존속된 관존민비(官尊民卑)라는 관상민하(官上民下)의 지평이 21세기에는 뒤집혀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세상을 바꾼다’고 해서 필자는 이 지평이 요동칠 줄 알았다. ‘검찰과의 대화’에서 희망을 가졌고, 몇 장·차관 인사에서 그의 만용도 보았다. 그런데 곧 행정관료들의 달콤한 보고와 조아리는 자세에 완전히 포위되었다. 시민을 조종의 대상으로 다루고, 시장의 힘을 거부하는 단세포적 평등철학이라는 본체가 나타났다. 계속 정부를 키우고 정부 내부조정에 매달리는 행정편리를 추구했다.

세금을 더 거두는 데 급급하더니, 커진 예산의 집행방법도 줄줄이 관료들이 꿰어 차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심사제도나 인센티브(incentive)라는 것은 주는 사람의 입김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정부 출신의 인사를 총장으로 모시고, 공무원 중심의 박사과정이 운영돼야 할 판이 되었다. 정부로부터 바람막이를 하고 행정에 기름칠을 잘해 몇 푼 더 얻어 보려는 방책이다. 따라서 대학의 행정이 교육과 연구보다 더 높은 곳에서 폼 잡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고등학교나 중학교로 가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수많은 국책 연구기관은 또 어떤가? 과학자들을 행정이 요리한다고 하면 심한 말일까? 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늘어난 예산으로 지원이나 진흥이다 하면서 갖가지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잘게 나눈 자금 좀 얻어 쓰려면 네트워크(network)를 개발해야만 한다. 자연히 행정 주변에 얼쩡거려야 한다. 각종 산하기관이나 협회에 나가 관료들과 면(面)을 통해야 한다. 물론 골프도 필요하고. 이러한 자금은 실제 경제적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데도 행정 조직이 생기기만 하면 지원금 제도를 계속 만들어 낸다. 공기업 하나에 매달린 대기업 간부의 수는 또 얼마인가?

이러한 문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후보들이 약속하는 그 어떤 정책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정부·기업·시민사회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경제 활성화는커녕 양극화나 노령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시민을 윗자리에 모시고, 기업을 앞바퀴 삼고, 정부는 뒷바퀴로 물러나는 전륜구동(前輪驅動)차를 만들어 가야 한다.

시민에게 충직하고, 시장의 힘을 존중하고, 스스로 몸을 낮추는 정부,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작은 정부다. 이 구조적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올해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두는 셈이다.

이달곤 서울대 교수·한국행정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