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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는 절반, 즐거움은 두 배 (2)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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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07면

100석 규모 극장에서 이룬 ‘작은 기적’-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연말 무대에 오르는 작지만 울림은 큰 공연들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무대에는 세탁소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대형 세탁기가 있다. 11월 23일 배우 조준형씨가 평소보다 세게 이 세탁기 문을 닫았다가 동그란 창이 박살 나면서 물이 쏟아졌다.

2003년 예술의전당 자유 소극장 초연 때부터 끌고 다녔으니 5년째 최소 1000회 이상 공연을 해온 세탁기는 그렇게 1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첫 번째 생을 다한 것이다. 이 10만 명은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이 개관한 2005년 이후 맞은 관객만 헤아려 나온 결과. 100석 규모의 극장이니 3년을 꼬박 만석을 이루어야 가능한 숫자다.
초연부터 오아시스 세탁소 주인 노릇을 해 온 조준형씨는 “언젠가는 100만 관객도 될거야”라고 호언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첫날부터 관객을 세보라고 했다”고 웃으며 고백했다.

초연부터 좌석이 없어 극장 문 앞에서 돌아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지만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이 전용관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석 달만 버티면 일 년은 가겠지만 그 일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들 했다.

게다가 당구장으로 쓰이던 지하 건물은 공간 가운데 기둥이 있어 극장을 만들기에 적당하지 않았고 너무 좁기도 했다. 이 극장 맨 앞줄 바닥 좌석에 앉은 관객들은 자세가 불편해 다리를 뻗었다가도 배우가 걸려 넘어질까 싶어 동선을 따라 틈틈이 다리를 접어야만 할 정도다. 장마철이면 물이 차고, 로비도 없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깥에서 공연 시작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극단 ‘모시는 사람들’ 김정숙 대표와 함께 건물에 눈독을 들인 조준형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005년에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라는 연극을 지하 주차장에서 했다.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만 불편하지 공연은 할 만했다. 그 공연 연출도 창고든 스타디움이든 찾아가면 어디든 극장 아니겠느냐고 하더라.”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이 1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입장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은 건물세가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이 극장 월세는 대학로 중심 지역 극장의 20~30%에 불과하다.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의 무모한 시도가 성공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 이춘완 기획실장은 “연극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이 공연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처음 찾아온 소극장이 너무 불편해 깜짝 놀라는 관객을 보면 미안하기는 하지만(웃음)”이라고 말했다. 지방에서 관광 버스를 타고 서울 구경을 온 이들이 대학로 코스의 하나로 들르기도 하고, 리포트 숙제로 보러 온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과 돌아오기도 한다. 조준형씨는 2006년 월드컵 토고 전이 있던 날 30명이 넘는 관객이 왔다고 자랑했다. “관객이 없을 줄 알고 공연을 접으려 했다. 그런데 안 할 수 없는 거다. 사실 우리도 경기 보고 싶었는데.(웃음)”

그러나 좋은 공연도 때로는 흔적 없이 땅 속 깊이 묻힐 수가 있다.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은 비교적 과감하게 제작비의 15%를 홍보 예산으로 책정하고 입소문이 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자금도 투입했다. 이춘완 실장은 “입소문이 퍼지는 데 최소한 두 달은 걸리고, 길게는 넉 달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단지 공연이 좋다고 장기 공연을 생각할 수는 없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름 휴가도 박하게 아끼며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은 27개월 동안 공연을 해왔다. 그 사이 나무로 만들었던 세탁기 모양 매표소는 반짝이는 버튼과 네온 간판도 달린 신형으로 업그레이드됐고, 극장이 있는 혜화동 로터리에는 게릴라 극장을 비롯한 소극장들이 들어와 연극 타운 조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게다가 12월 첫째 주에는, 드디어 10만 명째 관객을 맞이하게 된다. 정확히 며칠인지는 알 수 없지만 10만 명째 관객은 드럼 세탁기를 상품으로 받게 되고 그날 찾아온 거의 모든 관객이 1만원어치 되는 선물을 안고 돌아가게 될 거라고 한다. 12월 4~6일 사이가 될 것이다. 게다가 매월 첫 번째 수요일 낮 공연은 7000원인데 5일이 바로 그날이다.


2005년 혜화동 로터리 부근 모 세탁소 아저씨는 바짝 긴장했다. 좁은 동네 길 건너편에 ‘오아시스’라는 세탁소가 간판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극장은 2003년 공연을 시작한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 마련한 전용관이었고, 이후 세탁소 아저씨는 주연배우에게 직접 스팀다리미 사용 비법을 전수했다는 후문이다.
규모 작은 연극으로는 보기 드물게 전용관에서 공연 중인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서민들의 소소한 사연과 일상이 모여 빚어낸 연극이다.

무대는 한자리에서 50년째 대를 이어 영업 중인 오아시스 세탁소. 주인 강태국은 강남으로 이사 가서 세탁 편의점을 내자는 아내의 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벌 한 벌 정성껏 옷을 빨고 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 세탁소에 들르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그냥 가지 않고 비루한 삶의 흔적을 털어내며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저 그렇지만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오아시스 세탁소가 발칵 뒤집힌다. 중풍으로 말문이 막힌 부자 할머니가 중요한 무언가를 세탁소에 맡겼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재산만 노리는 할머니의 자식들은 임종 자리도 지키지 않고 세탁소로 쳐들어오고, 강태국의 가족과 동네 사람들까지 그 습격사건에 동참한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무대에 나서는 동네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웃기거나 슬프거나 무거운 이야기가 되는 변화무쌍한 연극이다. 뒤늦게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은 불효자나 중풍환자 수발로 먹고사는 중년 여인의 사연이 빨래처럼 펄럭인다. 중반을 넘어서면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그 모두를 같은 무대에 불러모아 오로지 돈에만 휘둘리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비웃기 시작한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다며 그들을 세탁기에 몰아넣는 강태국. 그러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상쾌한 비누 냄새를 흩날리며 끝내 관객을 웃음짓게 한다. 옹색한 무대를 귀여운 은신처로 사용하여 가난하다기보다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오픈 런(Open run)/ 오아시스 세탁소 극장/ 문의: 02-3673-0888
전석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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