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에 300만원까지… 고액 컨설팅 성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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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06면

지난달 22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한 입시전문업체가 주최한 2008 대입 입시전략 설명회. 수천 명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가장 확실하고 효과가 큰 컨설팅을 이제 직접 만나 보세요.’

등급제 수능이 왜곡한 입시 시장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입시설명회에서는 ‘방문컨설팅’이라는 제목의 전단이 나돌았다. 한 사설학원이 주최한 행사에 S학원이 와서 이런 전단을 뿌렸다. 학생 자료를 5시간 분석한 뒤 원장이 가정을 방문해 대학 선택을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컨설팅 비용은 두 시간에 50만원.

S학원 원장은 “수능 등급제 때문에 문의가 빗발친다. 수능성적표가 나오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비용을 올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등급제 수능 제도 때문에 수능 예상 성적과 지원 가능 대학을 전혀 알 수 없다. 수능

총점이 높은 학생이 낮은 학생보다 오히려 수능 등급이 떨어지거나 같은 등급 간 동점자가 크게 늘어나게 됐다. 교사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이런 틈새를 학원들이 파고들었다. 수능 이전에 30만~40만원 하던 컨설팅 비용은 수능 이후 50만~60만원으로 뛰었다.

올해 고려대 정시모집에서 1등급과 2등급 간 점수 차는 수리 가형이 8점이다. 이럴 경우 총점이 높더라도 등급 간 경계에 걸려 수능 등급이 한 단계 떨어지면 지원하는 대학을 한 단계 낮춰야 한다.

K교육컨설팅은 최근 대구·울산에 사무실을 새로 냈다. 서울에 4곳의 상담센터가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전국에서 쇄도하는 상담을 감당할 수 없었다. 상담원(50명)이 부족해 계속 늘리고 있다. 상담료는 시간당 30만원이다. 이 학원은 인터넷 상담(7만7000원)도 병행하고 있다. 이 학원 원장은 “10월에 방문 상담 예약이 끝났는데도 상담을 받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 W학원에는 방문 컨설팅 접수가 이달 중순에 마감됐고 대기자가 줄을 서 있다. 넘치는 수요는 전화 상담으로 돌리고 있다. 전화 상담료는 20만원이다.

올해는 D·J·U 등 대형 학원들이 가세했다. 이들은 최고 40만원을 상담료로 챙긴다. 이름이 알려진 학원은 30분에 300만원을 받기도 한다. 업계 측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0만 명가량의 수험생들이 컨설팅에 의존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입시설명회를 찾은 학부모 김모(49·여)씨는 “웬만한 학원이면 컨설팅을 한다. 작게는 30만원, 많게는 50만원을 받는다. 자식 생각하면 돈 100만원인들 아깝겠느냐”고 말했다.

입시 컨설팅의 효과는 미지수다. 메가스터디 손은진 전무는 “대학별 모집요강만 수백 개, 수천 개가 넘기 때문에 어느 입시전문가도 모든 대학의 요강을 꿰고 있지는 않다”며 “스스로 입시전문가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부법 도우미 사이트’ 공신의 강성태 대표는 “학원끼리 카르텔을 형성해 대학 배치표를 작성하기도 하기 때문에 컨설팅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무조건 컨설팅을 믿기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대학별 고사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교사가 학생 인솔해 서울 학원으로

광주 A여고 상위권 학생 50명은 수능 직후인 지난달 16일 전세 버스를 타고 상경했다. 통합논술 강의를 받기 위해서다. 이들은 연세대·고려대 수시 2학기 논술이 치러졌던 지난달 24일까지 서울 대치동 B학원 인근 오피스텔에 머물며 매일 집중 강의를 받았다. 오피스텔은 학원 측이 알선해줬다. 이른바 ‘논술 패키지’ 상품이다. 7일간 이들이 숙박비·식사비·교통비를 포함해 1인당 지불한 비용은 200만원. 광주지역 C고 40여 명도 대치동 인근 다른 학원에 한꺼번에 등록했다. B학원 한모 연구실장은 “접수는 수능 이전에 마쳐놓고 상위권 학생 지도교사가 수능이 끝나고 직접 인솔해 데려온 적이 있다”며 “지방 학생의 수요가 점점 많아져 올해는 총정원의 40%를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풍암고 이봉형 교사는 “올해는 수능등급제가 처음으로 시행되면서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해 전국의 교사들이 진로 지도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며 “지방에서도 지난해부터 통합논술에 대비해왔지만 진학 실적을 중시하는 일부 교사들이 상경을 원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8시 대치동 D학원, 수업이 끝나자 사투리를 쓰는 남학생들이 우르르 지나간다. 2일 수시 2학기 논술시험을 치르기 위해 올라온 재수생들이다. 이들은 정시 전형을 마치는 내년 1월 말까지 서울에 머무를 계획이다. 채모(19·전북 군산시)군은 경기도 동두천의 친척집에서 대치동 학원으로 통학하고 있다. 채군은 “학원과 집을 하루 4시간 동안 오가야 하지만 지방에는 아예 이런 프로그램마저 없다”고 말했다. 성북구 안암동 누나 집에서 거주하는 유모(18·울산시 야음동)군은 홍익대 건축학과 지망생. 유군은 “수리 ‘가’에서 2등급과 3등급 사이에 걸려 있는 것 같은데 3등급을 받을 경우에 대비해 논술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러 개의 논술 과외를 몰아서 듣기도 한다. 서울 경기고 이모(18)군은 “주중에는 대치동, 주말에는 청담동 논술학원을 다니고 매일 집에서 대학생 논술 과외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논술에만 한 달에 1000만원 가까운 돈을 내고 있다. 이 군은 “올해 이렇게 투자했는데도 떨어진다면 내년에는 아예 해외로 나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넣고 보자” 16개 대학에 지원

서울 경기고 3학년 김모(17)군은 이번 수능에서 중하위권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걸로는 정시 모집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수시 2학기에 16개 대학에 원서를 냈다. 고려대·한양대·중앙대·한성대 등 서울에 있는 대학 중 겹치지만 않으면 다 넣었다. 전형료로 지불한 돈만 140만원이 넘는다.

지난해까지 수시 2학기는 학생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김군은 “수능 등급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시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모든 가능성에 다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등급 간 동점자가 많을 것이기 때문에 올해는 눈치작전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학
생들 사이에선 ‘원서 질’만 잘 하면 의외의 소득을 올릴 수도 있다는 말이 나돈다.

총점이 낮아도 대학별 틈새정보를 노리면 합격증을 거머쥘 수 있다는 뜻이다.

상당수 학생은 ‘점수공개 카페’ 등에서 자기 점수를 올려놓고 정보를 입수한다. 여기에서 장난치는 사람이 늘었다.

함모(18·경기도 고양시 백석고)군은 “가족들의 아이디를 총동원해 점수를 높여 다른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훌리건(훼방꾼)들이 어느 때보다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점수공개 카페를 그대로 믿지 말고 소신 지원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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