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줄여 쌀개방 충격 대비-추곡수매가 동결의미와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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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7일 확정한 추곡수매안은 추곡수매제도의 방향선회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수매가동결과 수매량감축이다.
특히 지난 83년 이후 11년만에 처음으로 수매가를 동결키로방침을 정한 것은 정부로서는 일단 큰 맘 먹고 하는 일이 아닐수 없다.
이는 내년부터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에 따라 국내보조금은 줄여나가되 대신 농어촌발전 특별세로 새로 돈을 거둬(10년간 15조원)이를 농어촌 구조개선 등에 집중 지원하는 쪽으로정책의 줄기를 짜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
당장 현재의 예산으로는 수매량이나 수매가를 크게 늘리거나 높일 수 없게 되어 있다.작년에 단행한 양정(糧政)개혁에 따라 양곡증권으로 메우던 수매부족자금을 정부예산이 떠 맡고 있는 만큼 이제는 추경(追更)예산을 편성하지 않고서는 올 해 예산을 짤 때 정했던 범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농특세까지 신설한 마당에 추경마저 편성한다고 할 때 농민들을제외한 일반소비자들의 불만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또 WTO협정을 통해 쌀생산과 관련된 국내보조금을 93년 2조1천93억원에서 2004년엔 약 3분의 2 수준인 1조3천5백98억원으로 낮춰 가겠다고 한 약속을 내년부터 이행해야 하는부담도 안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사정 모두가 지금까지의 쌀 수매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안되게 되어있어 올해부터「11년만의 수매가동결」등으로 미리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당초 부처간 협의과정에서 농림수산부는 양곡유통위원회가 요구한인상률(3~6%)을 감안,가격은 동결하는 대신 수매량을 계획보다 30만섬 더 늘리자는 안을 내놓았으나 다른 부처의 반대로 20만섬만 더 늘리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올해도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정부안과 농민들의 요구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고 이같은 격차가 국회에 가서 정치적으로 다루어질 것이라는 데 있다.
농민들의 요구는 수매량을 작년의 1천만섬에서 1천1백만~1천2백만섬으로 확대하고 인상률도 8.1~9%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농민들 뿐만 아니라 양곡유통위원들도 정부 방침이 정해지자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강팔룡(姜八龍)양곡유통위원장(건국대 교수)은『정부안은 상당히충격적』이라면서『보조금감축으로 수매가동결이 어쩔 수 없는 추세라 하더라도 물가수준 등을 고려할 때 적어도 올해까지는 수매가를 2~3% 정도 올리고 내년부터 동결해도 된다 』고 말했다.
추곡수매안은 이제 정부나 농민의 손을 떠나 국회로 옮겨 갔다.
그동안 정부의 추곡수매안이 국회에서 수정 없이 통과된 적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수매량을 정부안보다 다소 늘리거나 값을 소폭 올리는 선에서 국회동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농특세를 바탕에 깐 추곡수매제도 개선안이 경제논리에 충실한 것이라면 아무리 국회라 하더라도 정치논리에만 매달려 국제화시대의 농정(農政)을 도외시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朴義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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