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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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이 두부를 먹어야 좋대.』 악동들이 건영에게 두부를 먹이고교도소 앞에 소금을 뿌렸다.그래야 사회에 섞이기 전에 감방에서의 액운을 차단할 수 있다는 거였다.누구는 그런게 아니라 다시는 재수없이 감방에 들어갈 일이 없도록 비는 의식이라고 했고,누구는 그저 두 부장사들이 만들어낸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건영은 이유를 따지지 않고 두부를 잘 먹었다.
먹어두면 좋다니까 그저 퍽퍽 입에 처넣었다.하기야 두부에는 단백질이 많으니까 교도소 앞에서 먹는다고 특별히 몸에 나쁠 건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건영이는 부모님들이 계신 쪽으로 가서 뭐라고 오분쯤 이야기를하고는 우리쪽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야,니들 이거 두부만 먹이고 말 거야.난 생각해둔 데가 많다구.』 『좋아,말해봐.어딜 제일 가고 싶었는데….』 그랬더니건영은 한동안 뭔가 생각해보는 것 같았는데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너무나 많은 곳에 가보고 싶어했다면 딱 한군데를 꼬집어 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서울로 오는 버스를 집어탔는데,건영은 신촌 쪽에 가면아는 얼굴들 만나는 게 부담이 된다고 해서 우리는 봉천동 네거리 부근에서 내렸다.몇군데를 기웃거리다가 건영이가 아무데나 들어가자고해서 밥도 팔고 소주도 파는 그런 집에 둘러앉았다.
건영은 우리가 어떻게 지냈는지 앞으로 대학엔 가는 건지를 궁굼해했다.
『야,그래서 그 뭐냐? 수능시험인지는 잘들 봤냐.』 『아직 발표를 안한 게 다행이지 뭐.그래도 올해는 11월달에 또한번 본다니까 그것두 다행이구… 난 포기했어.우리야 뻔한 생활이잖아.건영이 니 얘기 좀 해봐.힘들었지?』 건영이 찌개국물에 밥을비벼먹다가 고개를 들고 정색을 했다.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지 뭐.또 너희들은 아무리 설명해도감방생활이라는 걸 모를 거라구.알 필요도 없다니까.달수 넌… 써니라는 애는 아직 못찾은 거냐?』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써니 이야기야 말로 남들이 알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 거였다.불쑥 서로 알 필요가 있는 일들은 기실 얼마 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그래서인지 나는 조금 우울해져버리고 말았다.건영이도 써니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술잔이 돌아가고,우리는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애들 이야기를 주로 했다.그 애들이 나중에 뭐가 돼 있을까에 대해서 말하다보니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5년 뒤를 생각하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20년 뒤를 생각하는 건 재미있었다.확실한 미래는 답답했고 불확실한 미래만이 우리의 희망인 셈이었다.
덕순이는 가수나 탤런트가 되면 어울릴 거라고 건영이가 그랬고,왕박은 판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내가 그랬다.왕박 걘 마음이 약해서 뭐 제대로 형을 때릴 수나 있겠어.누군가가 하영이 이야길 꺼냈다.
『걘 의사가 될 거라던데… 어울릴 거야.친절한 의사는 아닐 테지만.』 누구는 경찰대학에 간다더라,야 그 새끼가 어떻게 남을 잡겠다구 그래,저나 잡히지 말아야지,누구는 어떻구,육사에 가서 말이야,그 주제에 장군이 되겠다는 거 아니냐,그러다가 기회가 오면 또 쿠데타 같은 걸루 한번 먹을지도 모르는 거지 뭐.달수 넌 소설가가 되는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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