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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오늘의현장>下.전쟁에 신음하는 人流의 遺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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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터키 국경의 아르메니아 산악지대 만년설에서 발원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초원지대인 메소포타미아(江 사이의 땅이라는 의미)는 기원전 19세기 수메르인들이 정착하면서부터 인류최초의 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티그리스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문명의 발상지 바빌론을 비롯해 아라비아 대상(隊商)의 중심도시였던 하트라,아시리아 제국의발상지인 모술이 차례로 나타나고 강 하류쪽에는 성서에 나오는 에덴 동산등 우르문화권이 자리를 잡고있다.
이라크는 이러한 풍부한 문화유적으로 이집트와 함께 한해 외국관광객만 2백만명이 넘는 세계적 관광지였다.
그러나 영국 로이터통신 기자와 함께 바그다드 90㎞ 남쪽의 옛도시 바빌론을 찾았을때 정부 관리인은 한명도 만날수 없었다.
바벨탑.공중정원.돌사자.이슈타르문과 하무라비 법전(원형은 루브르박물관에 보관)등 인류의 불가사의로 꼽히는 고대유적들이 허술한 철조망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간신히 구한 현지안내인은『지난 일년동안 외국인은 처음 본다』며 박물관의 낡은 자물쇠를 풀었다.박물관 안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유적파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전쟁이었다.
다국적군의 직접 폭격대상은 아니었지만 바그다드 남쪽으로 40㎞ 떨어진 쿠테시폰돔은 공습으로 인해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이 돔은 근처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격을 당하면서 그 영향으로 금이 갔다.이라크 남부의 우 르와 라함의성탑(聖塔)에도 포탄 파편이 4백개의 구멍을 남겼으며 바그다드박물관은 다국적군의 공습을 피해 10만점에 달하는 전시물을 지하대피소에 보관했는데 아직 절반도 제자리에 갖다놓지 못하고 있다. 유물에 더욱 심각한 위협은 약탈이었다.
특히 내전에 따른 치안공백을 틈타 상당수의 보물들이 유출되었는데 91년 한때 시아파 반군에 점령당했던 바스라박물관에서는 9백46점의 전시물이 도난당했다.
또 쿠파박물관에서 4백33점이 약탈당하는등 내전기간동안 8개지방 박물관에서 모두 2천6백53점의 유물이 사라졌다(이라크 문화재국 통계).모술박물관의 칼리프 모하메드(53)씨는 다국적지상군이 한때 진주했던 우르지방에도 다국적군이 철수하면서 이동가능한 상당수의 유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욱 광범위하고 심각한 유물의 훼손은 무관심과 시간의흐름에 따른 간접적 문화파괴 현상이었다.모술시 외곽 아시리아의유적지 니르무드에는 수십마리의 여우와 살쾡이들이 유물들 사이에숨어있다 인기척에 놀라 도망쳤으며 아슈드 나 시프랄프왕의 푸른빛 대리석 조각(기원전 8세기)에는 어린이들의 낙서가 가득했다. 한해 5백만 이라크 디나르(한화 약8백만원)가 없어 발굴이중단된채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북부 하트라지역 관리소장 크하프 바브웨(80)씨는 정부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하트라유적 복원사업도 지난 1년동안 완전히 중단됐다고 했다.발굴에 참가했던 젊은 고고학자들은 대부분 전쟁에차출됐으며 지금은 4명의 늙은 관리인들이 20만 평이 넘는 광대한 하트라 유적지를 지키고 있었다.
『차라리 땅속에 그냥 묻어두는 건데….』 바브웨씨는 발굴작업을 중도에서 멈추는 것은 오히려 유적이 비와 바람에 노출돼 훼손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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