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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인터넷 10년] 7. 범람하는 쓰레기 정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에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미국식 디지털TV를 정부가 밀어붙이는 것은 미국식 좋아하는 재벌들한테 정치자금을 받아먹었기 때문이지요. 미국식으로 하면 그나마 이동수신도 안되지요. 역시 미국이 문제야. 고물 비행기 억지로 들여올 때부터 알아 봤다니까.”

지난 12일 귀가길에 만난 택시 기사는 잘 나오지 않는 차량용TV 화면을 보며 말을 꺼냈다. 웬만하면 택시 안에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필자지만 어디서 들은 말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기사는 “인터넷에서 본 것”이라며 목소리를 낮춰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덧붙였다. 미국식이 고화질(HD)고정수신에서 강점이 있다는 것, 이동수신은 스카이디지털 등 위성방송이나 앞으로 도입할 DMB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등의 반론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그저 “미국식 디지털방송 개발자가 한국인이며 관련 특허도 한국이 가장 많답니다”고 답하고 말았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일반인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정보통신 업계에서는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생산되고 있는 양의 데이터는 1백일마다 두배로 증가하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더 많은 정보의 유통은 더 많은 평등과 자유를 위한 토대다. 그러나 인터넷에 정보가 늘어나는 것이 그만큼의 축복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불필요한 정보로 인해 정작 쓸만한 정보를 찾기 어려운 ‘쓰레기 정보의 홍수’라는 반작용도 심각해지는 것이다.

이같은 정보의 양산은 ‘지식폐인’의 등장으로 더욱 심해지고 있다. 2002년 10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지식검색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한국에서는 지식검색 열풍이 불고 있다. 기존의 검색과 다른 점은 궁금한 내용에 대한 관련문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어떤 종류의 질문이라도 만들어 올린다는 점과 그에 대한 답을 불특정 다수가 댓글 형태로 단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런 답변들에 대한 평가를 전문가가 아닌 네티즌들이 선택한다는 점이다. 쉽고 빠르게 원하는 대답을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잘못된 답이라도 많은 네티즌이 관심을 보이면 다수설로 굳어질 우려가 있는 것이 단점이다.

예를 들어 ‘독도는 한국의 영토인가’는 질문을 해 보면 ‘1월 22일 한일 어업협정이 발효되면 독도 지배권이 일본으로 넘어간다’는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99년부터 잊을만 하면 한번씩 해를 바꿔서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는 글이지만 여전히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또 ‘해병대를 보내 독도를 지켜야 한다’거나 ‘국제 재판으로 일본이 다시는 망언을 하지 못하게 해야한다’는 등의 피끓는 주장이 뒤를 잇는다.

반면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이슈로 만드는 것은 한국에게 손해’라거나 ‘군인을 배치하면 분쟁지역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어 민간인인 경찰이 지키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등의 차분한 의견은 뒤로 밀리기 일쑤다. 지루하고 딱딱한 전문가의 의견보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주장이 인기투표에서 많은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여기에 ‘댓글 저널리즘’으로 불릴 만큼 네티즌들의 참여가 활발한 한국에서 합리적인 토론보다 욕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것도 질 좋은 정보를 축적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인터넷 중앙일보 사이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보시사 칼럼니스트 이재일씨는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 그저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슴없이 인신공격을 하거나 욕설과 비방을 퍼부어 대는 ‘욕티즌’들이 열띤 토론을 거쳐 정반합(正反合)의 여론을 형성해 가는 인터넷의 순기능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협점을 찾거나 대립을 중재하려는 움직임은 목소리 큰 양극단 주장 사이에서 사그라지기 일쑤고 이 과정에서 무엇이 사실인지조차 모호해진다. 결과적으로 이 모호한 사실을 바탕으로 다시 극단적인 주장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사실 인터넷은 비상용 군사 통신 수단으로 고안됐다. 그러나 배니바르 부시같은 초기 인터넷 개발자들은 하나같이 정치적 갈등과 오해, 무지를 해소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수단이 되기를 희망했다. ‘월드 와이드 웹’ (WWW)을 제안한 옥스퍼드대학 팀 버너스리는 “나는 웹이 지식을 공유하는 쌍방향적 바다에 가까워지기를 꿈꾼다. 세상의 불행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사이버 공간에서 그 문제를 풀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구촌’ 개념을 도입한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이나 하이퍼텍스트 개발자인 더그 엥겔바트 등의 전문가들은 인간이 언어생활을 시작했을 때와 문자를 창조했을 때 만큼이나 인터넷이 인간의 지성을 한 단계 올려놨다고 평가했다. 지식을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전 인류적 차원에서 공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개별 인간들이 만나 정보와 인식을 공유하고, 나아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내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지식을 공유하고 갈등과 오해를 해소하는 이상적인 상황으로 발전하려면 네티즌들이 나와 ‘다른’ 의견을 ‘틀린’ 것으로 몰아붙이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또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구분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나도삼 사이버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가치있는 정보를 가려내는 문지기(게이트키퍼)로서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깊이가 없으면 집단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므로 전문가들이 가진 ‘특화된 지식’의 심도는 더 깊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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