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Q:부천필 역동적 도전의 힘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부사모’ 회원들이 부천필의 지휘자 임헌정(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씨와 함께 연주 후 만나 모임을 갖고 있다. [부사모 제공]

27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로비. 토론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브루크너 9번은 3악장에 들어서야 오케스트라 실력이 나오는 것 같아요. 특히 중간중간 흐름이 끊어지게 작곡해 청중이 편하게 듣도록 하는 게 힘든 곡이니까.” “저는 일고여덟번씩 듣고 왔는데도 이해하기 힘들더라고요.”

이들은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부천필)를 후원하는 동호회인 ‘부사모(부천필 사랑 모임)’ 회원들. 이날부터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를 시작한 부천필을 위해 연주가 시작되는 오후 8시보다 30분 일찍 모였다. 중간 휴식때는 물론 연주가 끝나고 나서도 이들의 토론은 계속 됐다.

“오늘 임헌정 선생님이 1악장 중간에서 지휘봉을 떨어뜨리셨잖아요. 지난 1월 신년음악회에서도 지휘봉을 떨어뜨렸는데 그 이후에 연주가 훨씬 부드러워졌거든요. 우연의 일치인가?”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조원형(28·대학 강사)씨는 “부천필 연주를 모두 쫓아다니며 듣는 덕분”이라고 ‘부천필’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27일 첫 테이프를 끊고 내년 2월 29일 두번째 연주회를 갖는 부천필은 2009년 11월 9개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시리즈를 마치게 된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4년에 걸쳐 말러 전곡을 연주한 이후 꼭 4년 만이다. 한국에서 잘 연주되지 않았던 말러의 교향곡은 부천필의 도전 이후 유행이 됐다. ‘말러리안’이라는 말러 연구 동호회가 생기는가 하면 오케스트라들이 앞다퉈 말러를 연주했다.

지휘자 임헌정 씨는 “말러 시리즈가 끝난 후 이제는 브루크너를 할 때라는 분위기를 많이 느꼈다”며 “말러만큼이나 잘 연주되지 않는 브루크너에도 동호회를 비롯한 매니어들이 목말라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번 ‘대장정’의 동기를 설명했다.지방 오케스트라인 부천필이 이러한 ‘대장정’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대표적인 힘은 바로 ‘부사모’에 있다.

이들은 공연이 끝나면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뒷풀이에 참석하는가 하면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만의 연주평을 올린다. “부악장이 바뀌니 소리가 달라진 것 같다” “팀파니가 강약의 폭을 너무 좁게 잡았다”는 등의 세세한 분석까지 들어있다. 말그대로 ‘청중의 진화’다.

이런 애정어린 지적은 고스란히 부천필을 업그레이드 하는 자양분이 된다. 오케스트라 사무국은 물론 지휘자와 단원들까지, 가장 가까운 청중이자 비평가인 동호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2005년 한 음악회의 앙코르곡을 동호회의 의견을 들어 결정했을 정도다. 이같은 동호회의 ‘앙코르 개입’은 지금도 간간이 계속되고 있다. ‘부사모’ 대표인 박혜진(35)씨는 “청중의 활발한 지적을 발전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에서 부천필에 대한 신뢰가 다시 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오케스트라를 떠받드는 지원군은 ‘부사모’ 뿐이 아니다. ‘부천필 후원회’는 부천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기업가들 30여명으로 이뤄진 또 다른 조력 집단이다.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주원석(49) 미디어윌 회장은 “‘부사모’가 연주에 대한 피드백과 조언을 담당하고 후원회는 주로 금전적 지원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주 회장이 일년에 내놓는 후원금만 1억원 수준이다. “오케스트라가 돈 걱정 없이 연주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는 주 회장은 “두번째 전곡 연주 시리즈를 시작하는 것이 하나의 성과”라고 덧붙였다.

◆요제프 안톤 브루크너(1824~96)=종교적인 내용의 대규모 교향악을 완성한 작곡가. 젊은 시절에는 베토벤·멘델스존에 심취했다가 후에 ‘바그너의 추종자’라 불릴 정도로 그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만큼 신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곡이 많다. 크고 화려한 구조와 호흡을 가진 교향곡 9개를 만들었는데 금관악기가 확대된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내뿜는 큰 음량을 요구하며 30분 넘게 느린 악장이 지속될 정도로(8번 교향곡) 흐름을 단번에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전곡 연주·감상이 어려운 도전으로 꼽힌다.

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