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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여행기>베르너 오버란트 일주 트레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서양 여행자들은 여행의 멋을 안다.천편일률적으로 유명한 대도시 위주의 관광을 하는 우리네와는 사뭇 다르다.예를 들면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기도 하고 산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내려오기도 하는등 주어진 여건 속에서 다양한 방 법을 통해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단순히 보는 것은 관광이지 여행이 아니다』는 것이 그들의 여행 철학이다.
지난해 넉달간(5~8월)지속된 유럽 배낭여행중 두달이 돼서야알프스로 향한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알프스의 3대 거봉인 융프라우(4천1백58m)를 비롯해 멘히(4천9백9m).아이거(3천9백70m)등의 산들과 튠.브린츠 호(湖)등 2개의 커다란 호수가 있는 곳으로 스위스에서도 가장아름다운 베르너 오버란트 지역.
여기에서 나는 여행 책자에 나온 틀에 박힌 여행,즉 등산 열차로 이 지역을 일주하는 방법이 아닌 색다른 방법으로 여행하기로 했다.이름하여 베르너 오버란트를 일주하는 트레킹.
인터라켄은 베르너 오버란트의 현관격인 도시로 여름에는 융프라우에 오르려는 관광객들로,겨울에는 스키를 타려는 스키어들로 1년 내내 붐빈다.
베른에서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 역에 하차,발머스 유스호스텔에여장을 푼 나는 트레킹을 위한 정보 수집과 준비로 첫날밤을 보냈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계속 내리고 있지 않은가.그렇다고 비가 그칠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등에는 배낭을 메고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나섰다.8월인데도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가도가도 끝없는 길.도로 옆을 걷다보니 아슬아슬한 순간도 몇차례씩.문득「내가 이런 고생을 무엇때문에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그때마다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다시힘을 얻고,그러기를 수십번.
어느새 비구름은 서서히 걷히고 약 7시간에 걸친 산행끝에 그날의 목적지인 그린덴발트에 도착했다.
셋쨋날 아침.
설마하던 생각이 현실로 다가와 하늘이 또 장난을 친다.비다.
하루에도 몇번씩 비가 오고 개인다는 말은 들었지만 3일째 계속해 내리는 비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그래도 할 수 없지.하지만오늘은 어제와 사뭇 다르다.제법 능선도 가파르고 장대비에 자욱한 안개까지 뒤덮여 산길은 온통 진흙밭이었고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됐다.이 높은 곳에서도 방울 소리를 내며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만이 유일한 나의 여행 동반자였다.얼마나 걸었을까.갑자기 비가 멎고 안개가 걷히면서 나타난 광경-세상이 온통 새하얗다.
클라이네 샤이데크,「유럽의 지붕」이라는 융프라우에 오르기전 등산열차를 갈아타는 조그만 산악마을.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해발 2천61m나 되는 곳에서 잔 때문일까.머리가 약간 어지러워 일어나 보니 이번엔 비가 아니라 눈보라가 휘몰아 친다.한여름에 맞아보는 눈,색다른 기분이다.눈 앞에 펼쳐진 아이거.멘히.융프라우의 거대한 자태.웅장한 자연에서 느껴지 는 벅찬 감동.호연지기란 바로 이런 것일까.
만년설로 뒤덮인 아이거 글래스커(2천3백20m)까지 올라간 나는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예쁜 마을 벵겐을 거쳐 라우터 브루넨으로 내려와 캠핑장에서 1박한 후 다음날 윌더스윌까지 하이킹,그곳에서 히치하이킹으로 베른에 도착함으로 4박5일 간의 융프라우 트레킹을 무사히 마쳤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남들이 이미 가보고 해본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길과 경험을 스스로 찾아 가는 것.그러면 여행의 즐거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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