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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취재] ‘忠淸 나침반’ 아직 흔들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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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8대 관전포인트

1. ‘昌風’에 충청 민심 또 요동
“자꾸 마음이 바뀌네유~. 나중 누구에게 표가 갈지 모르겄구유~.”

2. 정동영이 범여 단일후보 되면…
“글쎄올시다여~. 10년이믄 됐지. 안 그랴?”

3. 이명박 날개 없는 고공행진
“김경준이다, BBK다… 좀더 두고 봐야 한다니께.”

4. ‘충청권 변수 = 박근혜 변수’
“박근혜 떨어진 날 운 사람도 있시유~. 메칠을 그냥 드러눴어.”

5. 지역盟主 심대평 발길 주목
“표 무진장 쓸어 갈끼여~. 근디 누구한테 줄라나?”

6. 분위기 ‘냉랭’ 기권 확산 우려
“투표하믄 뭐햐? 돌아서면 싹 잊어버릴 텐디~.”

7. 여론조사 신뢰도 취약
“도심지 말만 들었지 은제 우리한테 물어나 봤시유?”

8. 충청지역 표밭은 ‘갈대밭’
“두고 봐. 될 만한 사람한테 죄다 몰아준다니께~.”

안개 속에 있던 충청권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무소속 출마로 대선 구도가 ‘확’ 바뀐 탓이다. BBK 변수, 범여권 후보단일화, 친박 표심 작동 등 복잡한 함수가 얽힌 가운데 과연 막판 ‘충청 나침반’은 누구를 가리킬까?


‘대선 변수? 도대체 그게 뭘까?’

충청도를 향해 운전대를 틀어쥐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내내 머리 속으로 생각했다.

지난 10월30일 오전 10시쯤. 1시간여를 달려 들른 곳은 충청남도와 경기도의 경계 지점인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여서 그런지 평일인데도 제법 사람이 많았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야외 의자에 앉았다.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사내 3명의 구수한 사투리가 들렸다. ‘아~ 여기는 벌써 충청도구나.’

“붙잡아 갈까봐 미서(무서워) 말 못햐~”

“아~ 사진은 왜 찍고 그랴?”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 후보를 놓고 옥신각신하기에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묻자 나온 반응이었다. 대체 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까? 다른 궁금증까지 보태지면서 ‘충청 민심은 어떨까?’로 생각이 번졌다.

오후 3시, 도착한 곳은 충남 논산. 누구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니 발길이 잠시 막막하다. 길거리·가게·터미널·재래시장 등 닥치는 대로 돌며 ‘진짜 민심’을 읽고 싶었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내세우는 것이 ‘민심대장정’이지 않던가?

그래서 우선 충남지역을 돌아보고, 충청권 정치 1번지인 대전 지역으로 이동한 다음 내쳐 충북지역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렇게 11월3일까지 4박5일간 헤집고 다닌 경로는 논산→서천→부여→보령→청양→아산→공주→연기→대전→옥천→보은→청주→증평→음성→충주→제천 등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지역은 충북 옥천. 놀라울 정도로 지역민들은 대선 흐름을 깊게 읽고 있었고, 각 후보의 특징은 물론 장·단점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여기에 개인적 소신까지 연결시켜 판세를 분석하는 ‘대선박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1차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다. 며칠이 지났을까? 이번 대선 최대 변수로 부각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 기자회견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얼마 후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가 ‘4자연대’를 제안하며 대선 행보에 속도를 냈다.

‘4자’는 이회창 후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고건 전 총리, 그리고 심 후보였다. 여기에 정동영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단일화 합의까지 더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충청권 표심이 술렁이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11월11일. 다시 충청도를 향했다. ‘이회창 후보가 출마한 후 대전·충청지역의 민심은 또 어떻게 흘렀을까’ 궁금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이회창 후보의 연고지인 충남 예산. 이곳을 시작으로 다시 3박4일간 예산→서산→홍성→천안→대전→진천까지 돌았다. 이회창 물결은 제법 거셌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의 두터운 지지층도 여전했다. 정동영 후보에 대한 찬반 입장도 재확인했다.

제17대 대통령선거가 11월15일 현재 34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레이스가 종반전으로 치닫는 가운데 각 주자는 ‘캐스팅보트’ 찾기에 혈안이다. 주자들마다 상호 깨물고 뜯기를 반복하는 상황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충청권 표심 잡기’다.

이들은 왜 대전·충남·충북지역 민심에 그토록 공을 들이는 것일까? 이유는 많겠지만, 우선 역대 선거 결과만 봐도 이번 대선 주자들의 심산을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1967년 이후 직선제를 시행한 역대 여섯 번의 대선에서 1987년 13대 대선을 제외한 다섯 번 모두 충청권에서 득표 1위를 기록한 후보가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충청도 표심이 후보의 당락을 결정지은 ‘최대 변수’였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비롯한 각 당 주자, 무소속으로 뒤늦게 레이스에 합류한 이회창 후보 등은 민심 행보의 출발점을 충청권에서 시작할 정도로 충청권의 비중을 높게 잡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애작전’에도 대전·충청지역의 분위기는 ‘냉랭’하기 짝이 없다. ‘어느 후보를, 왜 지지한다’ 식의 떳떳하고 명쾌한(?) 목소리는 좀처럼 듣기 힘들다. 다만 이번 대선과 관련해 충청권 지역민들은 각종 신문·방송 매체의 보도 내용을 꿰뚫고 있었다. 특히 후보의 부패 비리와 과거 행적 등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또 이를 토대로 정국전망까지 쏟아냈다.

충청도 사람들의 기질, 그리고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지난 10월 말부터 11월14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9일 동안 돌아본 충청권 현지의 목소리를 정리했다.

1 ‘昌風’에 잠잠하던 충청민심 들썩
“갑자기 찾아온 변수, 이제는 정말 모를 일이 됐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 선언을 지켜본 충청민심은 “이제는 정말 모를 일이 됐다”며 이른바 ‘창풍(昌風)’ 변수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 같은 입장은 이명박 후보의 고공행진에 당당히 맞설 제3의 인물 또는 대항마를 고대해온 속내 표출로 풀이된다.

이회창 후보에 대한 관심은 대선 출마가 거론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이미 통합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제치고 2위 자리에 오르면서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충남 서천군에서 ‘밀라노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구재광(39) 사장은 “이번에는 이회창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끊고 맺음이 확실한 이미지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반독재 정도의 힘이 필요한 시기에 이회창 후보가 가장 적당할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회창 후보의 상한가는 같은 보수 진영이기는 하지만 제1의 경쟁 상대인 이명박 후보에 대한 반대 여론, 참여정부에 대한 회의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중간 낙마에 따른 어부지리 효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대신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는 반(反) 참여정부 여론이 짙게 깔려 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표심은 다수 이회창 후보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였다. 이회창 후보의 연고지인 예산에서는 말 그대로 ‘창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이회창 후보의 선산이 있는 충남 예산지역을 중심으로 인근 홍성·광천·서산 등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홍성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김덕호(63) 씨는 “처음에는 이명박 후보를 선호했지만, 갈수록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먼저 나온 후보들한테 하도 안 좋은 말만 많이 나와 차라리 이회창 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심사를 밝혔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후배 주당로(55) 씨도 “이 지역은 대부분 이회창 후보 지지자”라며 “그나마 후보들 중에는 가장 무게감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충북지역에서도 이회창 후보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충북 충주시 이류면 만정리 소재 ㈜충주산업 임제근(44) 총무부장은 “충청도는 바람이 불면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며 “이회창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충분한 대적 상대이고 그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의 중론은 정권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의 분위기는,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야권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것을 하나의 대원칙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2 정동영의 막판 뒤집기?
“16대 대선 재연? 글쎄올시다. 두 번은 속아도 세 번은 안 속는다”

17대 대선을 치르는 수많은 시나리오 가운데 충청민심이 공감하는 부분은 단연 ‘범여권 후보단일화’였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시점에 대해서는 대답을 흐렸다.

후보단일화의 대상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민주당 이인제 후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등으로 압축된다.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은 정동영 후보 쪽으로 단일화의 무게가 쏠리고 있다.

대전시 동구에서 목간판 제작 전문업체 ‘한밭공예’를 운영하는 한태수(42) 사장은 먼저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 “신행정도시 건설에 반대해 놓고 이제 와서 충청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라며 “예전부터 서민과 가장 가까웠던 정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을 지지하고, 그 후보인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한 사장은 그러면서 “어느 순간 결정타가 나올 것”이라며 후보단일화의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또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겉으로는 확실히 기반을 쌓은 것 같지만 면밀히 보면 모래성에 불과할 것”이라며 정동영 후보의 막판 역전승을 강조했다.

정동영 후보로 예상되는 단일화는 많은 사람이 내다봤듯 지난 11월12일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대선 후보와 대표 4자 회동을 갖고 ‘당 대 당’ 통합과 ‘후보단일화’ 원칙에 합의하면서 물꼬가 틔였다. 물론 하루 만에 신당 내부에서 재협상을 주장하는 바람에 후폭풍을 맞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예정돼 있던 시나리오 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충남 서천군청 앞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나삼수(56) 씨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지난 10년 동안 해왔던 국가정책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며 정동영 후보의 단일화를 통한 정권 재창출을 기대했다.

그러나 15, 16대 대선을 치른 충청민심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 비판을 가하면서 “두 번은 속아도 세 번은 속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 어설픈 진보세력에 맡겼다가는 또다시 낭패를 볼 것”이라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공주대 자연대 학생회장 김동진(4학년) 군은 “예전에 두 번씩이나 써먹었던 작전을 또 쓴다면 뻔히 들여다보이는데 누가 지지하겠느냐”며 “과거는 과거일 뿐, 예전에 일어났던 일이 지금에 와서 또 성사되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유권자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정동영 후보 개인에 대한 문제점을 쏟아내면서 후보군 제외론을 내세우는 의견도 만만찮다. 충남 부여군 밤영농조합법인 서경원(39) 유통담당은 “정동영 후보는 참여정부의 2인자로 컸지만 결국 노무현 대통령을 배신했고, 자기 유리한 대로 당을 옮기고 바꾸는 모습에서 전혀 신뢰감을 찾을 수 없다”며 지지를 거부했다.

3 대세론 이명박 가로막는 새 변수
“김경준이다, BBK다… 좀더 두고 봐야 한다니께.”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 내 경선 과정부터 대선 초·중반을 거쳐 종반에 이르기까지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역시 가난을 이겨내고 특유의 의지를 살려 현대건설 회장에까지 오른 점이 높게 평가되는 분위기다. 특히 이명박 후보가 내세우는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 전술이 그대로 들어맞고 있다는 평가도 우세하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마곡리에서 송남휴게소를 운영하는 김남순(44·여) 씨는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며 “많은 사람이 ‘박통(박정희 전 대통령)’ 때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지난해 겨울 청계천에 가 봤다”며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경제를 살릴 만한 추진력을 가진 사람으로 이명박 후보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자못 거세다. ‘날개 없는 고공행진’이라는 발언이 충청지역에서 주로 터져 나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이명박 후보가 대대적으로 맞서고 있는 ‘BBK 의혹’과 관련해 충청권에서는 “김경준 씨의 귀국 결과를 지켜보고 나서 결정하겠다”며 관망하는 태도가 늘고 있다. 결국 이명박 지지를 유보하겠다는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금구리 가화1교 앞에서 만난 김재린(74·농업)·조상섭(72·농업)·정백영(72·자영업)·박오성(61·자영업) 씨는 “김경준 씨가 어떻게 말하느냐, 어떤 증거를 내놓느냐에 따라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는 상당수 달라질 것”이라며 “우리 같은 노인들은 이명박 후보가 그렇게까지 부자인 것에 대해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한나라당 경선에서 누가 더 표를 많이 얻었는지 기억해 보라”며 “시골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별로 호응을 못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주교육대 4학년 이범준(31) 씨는 이명박 후보의 경제 논리와 공약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명박 후보가 국어·국사 등을 영어로 가르칠 수 있다고 했는데, 교육에 대한 마인드보다 전부 경제 논리로 풀어가려는 신자유주의의 기수”라며 “도덕성 검증이 미흡한 후보가 나와 불도저식 이미지로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내놨는데, 과연 현 시점에서 필요한 공약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참여정부와의 무조건 단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홍성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주당로(55) 씨는 “한나라당은 기업 이전, 신행정수도 건설 등 서해권 발전을 반대했던 당”이라며 기존 이명박 후보 지지 의사를 철회하고 이회창 후보 쪽에 힘을 실었다.

㈜충주산업 임제근 총무부장도 “충주·음성지역 사람들을 만나 술자리를 하면 이명박 후보의 ‘불도저 방식’을 우려하고는 한다”면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참여정부에서 해놓은 업적까지 갈아치워 잘해왔던 일도 축소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4 충청권 ‘親朴 계열’ 막강 세력 과시
“박근혜 전 대표 욕보이면 그 후보는 반드시 쓰러진다”

대선 후보는 아니지만 대전·충청지역에서 여전히 ‘파워’를 과시하는 인물이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충청권에서의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도는 상상을 넘어선다. 소위 친박 계열로 분류되는 ‘골수 지지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8월20일 실시된 한나라당 경선 결과(모바일 투표 제외) 충청권에서는 대전 2,404표, 충북 2,343표, 충남 3,179표 등 모두 7,926표(58.9%)를 얻은 박근혜 전 대표가 대전 1,272표, 충북 1,823표, 충남 2,271표로 총 5,366표(39.9%)를 얻은 이명박 후보를 압도했다. 이 때문일까? 대선 레이스에 나선 각 후보는 박 전 대표의 행보에 이목을 집중하면서 눈치작전·구애작전 등을 펼치는 형국이다.

충청지역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층이 두텁게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가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책임정치인의 이미지가 견고하게 깔려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표가 어머니의 고향(충북 옥천)을 의식해 ‘충청의 딸’이라고 외친 것이 상당히 먹혔다는 평이다.

대전지역의 민심은 이를 대변한다. 친박 계열 인사들은 당원투표 결과에서 확연하게 패배한 이명박 후보 진영을 ‘못마땅한 점령군’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도 친박 인사들은 이명박 후보 지원에 다소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 지역 언론인은 전했다.

박근혜 전 대표 지지자들의 속내는 어떨까? 아직도 경선 패배의 후유증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이 같은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은 같은 당 후보인 이명박 후보 대신 이회창 후보에게 손을 들어주는 눈치다.

충남 광천에서 5년째 토굴새우젓 장사를 하고 있는 대근상회 최미순 (여·50) 사장은 “박근혜 전 대표가 후보로 나왔다면 100% 당선됐을 것”이라며 “어쨌든 박 전 대표의 마음 아팠던 때를 생각해서라도 이회창 후보를 찍겠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졌을 때 눈물을 흘린 사람이 많았다”며 “일부는 아예 머리 싸매고 드러누운 사람도 있었을 정도”라고 했다.

몰표 현상까지 나올 뻔했던 충북 옥천-보은-영동지역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이름조차 거론하는 것을 꺼려했다. 한 노인은 “당원들이 선거를 해서 박 전 대표를 1등으로 뽑아 놨으면 그대로 결정할 일이지, 굳이 돈까지 들여 모바일 투표를 하고 당선자를 뒤바꾸는 멍청한 방식을 강행했다”며 “이 지역 사람들은 무조건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이고, 박 전 대표를 욕보이는 후보는 반드시 선거운동 중간에 떨어져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5 지역 盟主 심대평 후보의 행보도 관건
“충청권 심 후보 표밭 누구에게 돌아갈지 궁금하다”

과거 자유민주연합의 녹색바람이 주름잡던 충청권은 90% 가까이 한나라당 지지 세력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사이를 비집고 당당히 국민중심당 깃발을 꽂은 충청지역 맹주가 있다.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나라당의 득세 분위기에서도 지난 4월25일 대전 서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당히 배지를 거머쥔 심대평 후보. 그의 화려한 이력은 충청권이 그의 표밭임을 방증한다. 민선 1기부터 내리 세 번 충남도지사로 활동한 심대평 후보는 관선 대전 시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는 고향인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일대를 비롯한 충청권 전 지역을 배경으로 탄탄한 기반을 다져왔다.

공주시 정안면에서 만난 농민 조성진(41) 씨는 “과거 JP(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가 힘을 발휘했던 충청권은 이제 심대평 후보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고 보면 확실하다”며 “이쪽 지역에서는 민심이 70% 이상 심대평 후보를 지지한다”고 전했다.

조씨의 이 같은 발언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대전일보>가 지난 8월27~28일 한남대와 공동으로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충청권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심대평 후보는 ‘충청도를 대표할 정치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심대평 후보의 영향력은 충청권 맹주로 평가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 점에서 각 후보는 심대평 후보의 행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13대 대선을 제외한 나머지 역대 대선 결과에서 보듯, 충청권에서 득표 1위를 기록한 후보가 대권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DJP(김대중+김종필)연합으로 청와대 주인이 된 15대 김대중 전 대통령,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로 16대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 등이 그 당사자들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충청권 표심의 향방이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때문에 심대평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은 유권자들은 물론 각 후보 캠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이회장 후보, 박근혜 전 대표, 고건 전 총리와 ‘4자연대’를 제안했을 때도 충청 표심은 또 한 번 크게 출렁거렸다.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안성호 교수는 “17대 대선에서도 충청권에서 1등을 차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충청권 표가 어느 후보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1, 2위가 바뀔 수 있다”고 분석했다.

6 엇비슷한 후보끼리 밥그릇싸움?
“깨끗한 후보가 단 한 명도 없는데 투표는 해서 뭐하나”

그런 가운데 대선에 대한 회의적 시각, 후보들에 대한 냉소적 반응, 매번 ‘킹 메이커’ 역할만 한다는 지역패배주의와 소외감 등이 충청권 유권자들의 ‘기권 의사’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각종 매체에 보도되는 후보들의 앞뒤 안 가리는 네거티브 전략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의 분위기마저 침체시키고 있다.

11월15일 현재 17대 대선이 34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충청민심의 상당부분은 대체로 “대선에 별 관심 없다”는 반응이다. “부패와 비리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도대체 누구에게 표를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이들의 속내다.

이명박 후보의 ‘재산 1조 원 설’, 김경준 씨 귀국이 최대 변수로 대두되는 ‘BBK 주가조작 의혹’ ‘병역문제’ 등과 정동영 후보의 ‘노인비하 발언’ ‘부당한 후보단일화’, 이회창 후보의 ‘불법 대선자금 문제’, 문국현 후보의 ‘전원주택 탈법 신축 의혹’ 등 후보들과 관련한 온갖 부패와 비리가 세상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충청권 지역민들은 “도대체 깨끗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며 “똑같은 후보들끼리 경쟁하는데, 유권자들이 뭘 보고 지지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후보가 시원치 않아 대선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다.

대천해수욕장 인근에서 영동횟집을 운영하는 김동빈(55) 사장은 “국민에게 결코 좋은 모습이 없다”며 “국민은 살기 어려운데 자기들 밥그릇싸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넌더리가 난다”고 질타했다.

부여군 남면에 사는 최향락(51) 씨도 “도대체 진실한 마음을 갖고 나라를 운영할 사람이 어디 있어 보이느냐”며 “충청도 사람들이 막판에 지지자를 바꾸는 것을 탓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지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후보 자신들부터 깨끗해야 하지 않으냐”고 쓴 소리를 내뱉었다.

공주대 정보통신학과 이남열(4학년·총예비역회장) 군 역시 “이명박 후보는 너무 문제가 많아 처음보다 관심도나 지지도가 많이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밖에 충청권 표심을 한 후보에게 밀어주더라도 결국 “별 볼 일 없더라”는 식의 소외감으로 인해 사표를 택하는 분위기도 배제할 수 없다. 충남 보령 웅천시장의 상인 김연우(여·58) 씨는 “어차피 찍어주면 얼마 되지 않아 얼굴 바꾸고, 말을 바꾼다”면서 “그런 것이 사람들을 질리게 만든다”며 언성을 높였다.

대전시 서둔동에서 만난 40대 한 회사원은 “그 동안 ‘충청인의 염원’이라는 말로 수십 년 동안 표심을 끌어갔던 JP에게 속아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라며 “대선을 치를 때마다 충청권 정계 인사들은 배불리 먹고 살 것을 마련했겠지만, 서민들은 늘 소외당했다는 느낌만 갖고 산다”고 주장했다.

7 거품으로 포장된 여론조사 ‘숫자놀음’
“충청권 여론의 오차범위가 전국에서 가장 큰 것 모르나?”

충청지역 민심은 1997년과 2002년에 일어났던 대선 후보 지지율의 공허한 메아리를 떠올린다. 잠시 15, 16대 대선 판으로 돌아가 보자.

1997년 당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50%를 넘어 대세론을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경선에 불복한 이인제 후보가 탈당하면서 한나라당으로 기울었던 500만 표를 집어 삼켰다. 그것이 화근이 돼 결국 대통령 자리를 김대중 후보에게 내줬다.

2002년 두 번째로 대권에 도전장을 내민 이회창 후보는 줄곧 4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유권자가 16대 선거 투표가 시작되는 순간까지 이회창 후보에게 ‘다된 밥’이라며 숟가락을 손에 쥐어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어땠는가?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이회창 후보는 김대업의 병풍(아들 병역비리 의혹) 사건과 함께 막판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라는 변수에 휘말려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충청권 지역민들은 두 번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한나라당 경선 전후와 11월15일 현재까지 지지율 40~50%대를 유지하며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를 놓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충남 보령시 웅천시장 상인 김연우 씨는 “선거하는 당일까지 누가 앞서든, 뒤지든 마지막에 뒤집어지는 것을 못 봤느냐”고 말했다. 서천군 ‘밀라노베이커리’ 구재광 사장도 “경제를 화두로 꺼내 관심을 불렀으나, 나머지는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챙긴 것”이라며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는 단순한 인기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후보의 공약보다 현대건설 회장 출신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생긴 막연한 기대감 표출이라는 것이다. 특히 반(反) 이명박 세력은 “지금까지 나온 수치만 갖고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충청권 여론조사 결과의 오차범위가 전국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는 것과 현재의 수치가 절대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충남대 도서관에서 만난 경제학과 조승의(4학년) 양은 “이명박 후보가 독주하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작용한 것”이라며 “뿐만 아니라 이명박 개인이 아닌 정당 이미지와 그를 돕는 주변 인물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샘플 선정 자체를 문제 삼는 부류도 있다. 옥천지역 주민 김재린 씨는 “여론조사가 기관 편의대로 도심지에 사는 사람들만 골라서 하지, 시골사람한테 조사하는 것은 보지도 못했고, 얘기도 못 들어봤다”며 “그런 숫자를 갖고 1등이니 2등이니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명박 후보 외에 ‘새 인물’로 부각되고 있는 문국현 후보의 지지율도 부정됐다. 많은 사람이 문국현 후보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다른 후보들처럼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문국현 후보의 지지율에서도 거품이 쫙 빠지게 돼 결국 지금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8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충청 표심
“끝까지 망설이다 선거 당일 ‘점조직’ 쫓아간다”

충청권의 특성은 무엇일까? 또 지역민의 기질은 어떠할까? 이에 대해 대전·충청지역에 살고 있는 자신들도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이 부끄럽다는 이유에서다. 또 “모른다”는 한마디도 “몰라유~” “모르지유~” “누가 알겄어~” 등 여러 단계의 분위기를 풍기는 말로 갈라진다.

뿐만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질문하면 자신의 입장을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옆집 누구는 이렇다”는 식으로 돌려 말해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취재차 만난 대부분의 지역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요하게 물으면 오히려 얼굴을 붉혔다.

대선과 관련한 민감한 부분은 대답을 회피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런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런 점을 기질이라고 보면 맞는가” 물었더니 대부분 맞는단다.

부여군 밤영농조합법인 서경원 유통담당은 “충청도에서는 막판에 될 사람한테 몰아서 찍어주는 분위기로 흐른다”고 말했다. 왜일까? 대전시 대덕구 홍도동에서 만난 회사원 김경일(40) 씨의 말에 일말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가만히 살펴보면 이상하게 ‘점조직’이 어느 순간 결정적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예로 들었다.

“어느 정당인에게 들었는데, 선거 전에는 다 찍어 주겠다고 하더니 선거 당일 투표장에 가서 우연히 들어보니 아파트 한 동 주민 전체가 투표를 하지 않았더라고 하더라. 이렇게 아파트에서도 나서는 사람이 한 명만 있으면 모두 그 사람의 말을 따라간다.”

충북 제천에 사는 이성렬(30) 씨도 이 말에 동의했다. “이상하게 점조직이 군데군데 만들어져 특히 선거라든가 회의 같은 것을 할 때 파벌이 나뉘고 입김 센 사람의 말대로 결정되는 것이 많다. 선거는 어차피 조직이 동원돼 하는 것이니 점조직들의 영향력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충청권에서는 마지막에 찍을 사람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왕이면 당선되는 쪽으로 표심이 기우는 것도 결국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충남 아산시에서 직물공장을 운영하는 백경식(40) 씨는 “선거 전에는 다 찍어주겠다고 말하지만 당일이 되면 얼굴 싹 바꾸는 ‘갈대 기질’이 있다”며 “이것이 곧 충청도 사람들의 기질이자 충청권의 특성”이라고 잘라 말했다.

오흥택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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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당장 찍으라면? 아직 영 모르겄시유~! 표심은 여전히 방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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