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상>하나라도 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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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다리 한가운데가 칼로 벤듯 잘려 나가면서 32명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건설부조리와 재해방지대책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고가 터진 뒤 불과 며칠만에 게다가 아직 다리붕괴의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슨 대책이 그리 많이 나오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결국은 두 가지겠다.문제점이 뭐고 어찌하면 이를 방지할 수 있는지 다 알면서도 정부가 총체적으로 직무유기를 해왔든지,또는사고가 나면 으레 그래왔듯이 우리도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몸짓이든지.
사고가 터진 바로 다음날「교량안전 확보를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은 정부는 나흘후에는 고위 당정(黨政)회의를 열어「건설재해예방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시설물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그 기민성(機敏性)에는 찬탄을 금할 수 없지만 이런 걸 행정.입법능력의 우수함이라 해야 할지,서류작성이라면 이골난 관료사회의 병폐라 해야 할지 가닥이 서지 않는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를 빈껍데기로 만드는 국내의 관행이문제인 상황에서 그 관행을 깨지 않고서는 백가지 대책을 만들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한가지라도 그런 관행을 깰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책중 눈에 띄는 것이 국내 감리(監理)시장 개방을 앞당기겠다는 내용이다.시공능력에 있어 해외에서도 그능력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우리 건설업체가 국내에서는 부실을양산(量産)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감리의 차이에 있다.감리가 제대로 되려면 능력있고 엄격한 제3자의 눈이 필요하다.경험도 일천(日淺)한 터에 학연(學緣).지연(地緣)과 부패의 먹이사슬로 서로 얽혀있는「안면(顔面)사회」에서는 능력도 객관적 시각도 기대하기 힘들다.일부에서는 감리시장을 조기 개방할 경우 걸음마 단계에 있는 국내업계의 초토화나 한국업체의 외국진출과 관련한 협상카드의 상실을 우려하고,또 그런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부실이 방지되고 안전이 확보될 수 있다면 이는「사소한」문제일 뿐이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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