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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누드 보면 꿈틀? 괜찮아 예술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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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입구나 공원에서 엉덩이나 가슴이 반질반질하게 닳았거나 손때에 절어 있는 누드 조각상을 발견한다. 그 집단 창작의 역사(?)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가끔 본다. 대개 동행이 있다. 홀로 지나치다 손을 뻗기에는 다소의 대담성이 필요한가 보다.

미술관이나 전시회장에 가면 누드 작품 쪽으로 눈길이 간다. 스스로 '속물'임을 고백하는 것 같아 곧 눈길을 거둔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 스스로 예술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 같아 어색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누드는 종종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특히 공개적인 장소에서 접할 때, 표현이 '노골적'일 때 더 그렇다. 보라고 내놓은 작품을 보는 데도 죄짓는 느낌이다. 그 죄악감에 대한 저항인지 '도대체 누드 작품은 왜 만드나' '누드 작품을 보고 성적 자극을 느끼는 것은 잘못인가' '누드 그림이나 조각이 왜 예술에 속하나' 등의 질문을 떠올린다.

'페로티시즘'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한다.

우선 예술은 사람이 감정을 표현해 자신을 알리거나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는 즐거운 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에로티시즘은 욕망이라는 감정을 표현하고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감정 교류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며 쾌락을 동반하는 즐거움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에로티시즘의 단골 주제인 누드는 훌륭한 예술이라는 것이다.

누드를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 작가는 자신이나 감상자의 시각에 가장 만족감을 주는 소재를 찾기 마련인데 역사적으로 화가들이 주로 남성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의 벗은 몸을 그리게 됐다고 알려준다.

누드 작품을 보고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것에 대한 수치심도 덜어준다. 저자는 거장 피카소가 노골적인 성애 장면을 그린 것은 "예술은 결코 품위있는 것이 아니다. 훔쳐보지 말고 당당하게 즐기라"는 뜻이었다고 설명한다.

책에는 누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의 역사적 변천과 사회적 반향들, 그리고 작가들의 뒷얘기 등이 담겨 있다.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에콜 드 루브르에서 박물관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파리 8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저자의 미술사 이해의 깊이와 폭이 보인다.

책은 에로티시즘 또는 누드 작품에 대한 개론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신화를 재현한다는 핑계로 벗은 몸에 대한 욕망을 분출했던 중세 작품들에서부터 '엽기'에 가까운 현대 작품까지 최근 6백년의 누드 예술사가 화보와 함께 소상히 담겨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이 일반적인 해설서로 소개되기를 거부한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에로티시즘을 분석한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다. 책 제목도 페미니즘과 에로티시즘을 합성해 만들었다.

아쉽게도 책에는 이러한 주제가 선명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성의 담론화라는 구실을 대며 성을 상품화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여성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정도로 저자의 뜻을 이해하는 게 적당할 듯하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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