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입 다물어야 할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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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강난 성수대교의 모습은 흉칙하다.끊어진 다리는 또한 신뢰의단절을 상징한다.정부와 국민,정치와 생활,당국과 기업간의 믿음이 동강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래서 그 모습을 보는 국민은 허탈하고,우울하고,안타깝다.그리고 분노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엄청난 사태에 대한 책임이 분명히 있는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오히려 국민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
우선은 성수대교를 건설한 당시의 서울시장들이다.착공당시(77년 4월)의 구자춘(具滋春)시장과 완공당시(79년 10월)의 정상천(鄭相千)시장이 그들이다.둘 다 민자당 의원이다.이들은『공사부실보다는 관리소홀 탓』이라고 주장한다.다리는 잘 지었는데관리를 잘못했다는 말이다.『통행량이 급증했다』고도 말한다.설계하중은 18DB(32t차량 통행가능)였는데 최근엔 24DB(43t〃)는 돼야 한다는 강조 같다.
그러나 그들은 성수대교보다 전에 완공된 한남.마포.잠실.영동.천호.반포대교(1층)등이 18DB인 것을 어찌 생각하는 지는입을 닫는다.
또 한 무리의 인물군이 다리를 건설한 회사관계자들이다.동아건설은「사과문」이라며『사고의 잘잘못을 떠나…』라고 말했다.관계자들은『관리소홀』이라고 주장한다.책임을 면하려는 다급함을 넘어 국민을 우습게 아는 고약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마차(牛馬車)통과기준으로 건설한 뉴욕의 맨해튼 다리가 1백년을 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면 너무 순진한 짓이 될 것 같다.내용을 털어놓고 사과하거나 그게 싫다면 침묵할 일이다.
침묵해야 할 사람들은 또 있다.바로 대한토목학회 관계자들이다.이 학회는 성수대교를 비롯한 한강다리들을『안전에는 영향이 없다』고 진단했던 소위 전문가들의 집단이다.이들이 2년간 벌인「서울시 주요 구조물 안전진단」에는 예산만도 9억5 천6백만원이들었다.사실 이원종(李元鐘)前서울시장의 국감 답변도 이 학회의엉터리 조사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부정확한 조사를 믿었던 사람이 패가망신하고,나아가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게 함으로써 수많은 인명이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당하게 했다는 비난을 받아 싼 사람들이다.그럼에도 사과 한마디 없다.뿐만 아니라 그 학회소속 전문가라면서각종 언론에 얼굴을 내밀고『원인이 이렇고,대책이 저렇고』떠들고있다.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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