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은 자(43) 바람이 차다.
밤의 바닷바람이어서 더욱 그렇다고,화순은 가슴을 감싸며 생각했다. 정이란 건 잠시,목숨은 길고,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이 남자는 다르다.내가 잡아서는 안되는 남자다.
그러나,함께 떠나자면 이만한 남자를 어디서 구하겠는가.그렇다면 나는 이 남자를 이용하겠다는 건가.그건 아니지 않은가.
네가 말했듯이,살아서,살아 남아서 맑고 깨끗한 남자 만났다는거,그거 하나만으로 난 널 따라 나서려고 했던 거란다.
『난 널 데리러 온다.지금,같이,움직였다가는…너 죽고 나 죽고 다 끝장이다.』 『내가 그토록 짐이 되었니?』 『짐이 아니다.』 『그럼?』 『어느 쪽이 너를 위하는 길인지,그걸 생각했었다.』 『그래,그렇게 믿자.그러나,너는 말이다,내가 혼자 이섬을 떠난다고 하면,무슨 말을 할래?』 길남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을 못하는 사이,화순이 말했다.
『물 떠놓고 새벽마다 치성드리는,나 그런 여자가 아니란다.』『마음 약해지는 소리 좀,하지 않을 수 없니?』 『마음 약해지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야.버리고 가도,이렇게 말해주고 만나주고,그러지 않아도 되는 여자라는 얘기를 해주는 거야.』 『무슨 소리니?』 『그게 고맙다고.』 『그게,뭔데?』 『너 만나서,너알아서,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았다는 말이야.그 고마움을 잊지않겠다는 말이다.』 길남이 고개를 들었다.
『너,누구 미치는 꼴을 보자는 거냐,나는 다시 돌아온다.널 데리러 돌아온다는 말이다.』 밤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면서 화순이 말했다.
『괜찮아.버리고 가도 돼.나는 너를 아니까.네가 어떤 사내인지를 아니까.』 『그런데?』 『돌아올 때를,네 말처럼 날 찾아올 때를 어떻게 기다리니.무슨 힘으로 그 세월을 참으란 말이니.난 그건 못한다.』 『나를 못믿는다는 거냐?』 『너는 오겠지.네 마음에 있는 그 말을 나도 믿어.그러나…네가 왔을 때 그때가 언제든,아마 난 여기 없을 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