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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트카' 장난감 같은데… 성능 장난 아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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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모델이나 RC카를 조립했던 어린 시절 추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놀이일 뿐 아니라 자동차의 구조학을 공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24분의 1이나 10분의 1 스케일이 아닌 실물 크기의 조립식 자동차가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그냥 모형이 아니라 실제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이 장착돼 타고 다닐 수 있다면.

 한국에선 다소 황당하게 들리지만 이런 키트카(Kit Car)는 일부 선진국에서는 꽤 일반적인 자동차 취미생활 중 하나다. 키트카는 완제품 상태의 자동차가 아니라 부품, 또는 반제품 상태로 구입해 직접 완성하는 차다. 키트카가 가장 발달한 곳은 영국이다. 영국이 키트카 종주국이 된 배경에는 차량 관련 세법과 국민성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영국은 1970년대 중반까지 완성차는 과세대상이었지만 자동차 부품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동차를 섀시·엔진· 변속기·스티어링·서스펜션·브레이크 등의 부품이나 반조립 상태로 구입한 뒤 직접 완성할 경우 완성차 구입 시 부과되는 세금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모터스포츠가 발달한 만큼 아마추어 레이스도 활성화돼 편의성이나 고급스러움이 떨어지더라도 무게가 가벼워 작은 엔진으로도 기본 성능이 높은 키트카가 쉽게 시장에 파고들 수 있었다. 직접 만들고 고치는 것을 즐기는 국민성과 함께 일상 스포츠가 된 모터스포츠 등에 힘입어 지금도 영국에서 키트카를 즐기는 인구가 줄잡아 10만 명 정도에 이른다. 키트카 제작업체들도 150여 개로 추산된다.

 키트카는 그 특성상 마무리가 거칠어 고급성을 추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성능이나 희소성을 추구하는 차종이 대세를 이룰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키트카는 레이스카에 가까운 스포츠카이거나 클래식카를 복제한 레플리카(Replica)다.

 키트카로 가장 유명한 차종은 ‘로터스세븐’과 ‘셸비코브라’다. 로터스세븐은 지금도 개량되어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 셀러이기도 하다. 셸비코브라는 영국 AC사의 에이스라는 로드스터에 미국인 레이서 캐롤 셸비가 포드 엔진을 탑재해 만든 차. 미국의 고출력 대배기량 엔진과 영국 경량 로드스터의 조합으로 스포츠카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차종이다.

 코브라 레플리카를 만드는 회사는 오리지널을 만들었던 AC와 캐롤 셸비를 포함하여 대단히 많다. 코브라 레플리카 중에는 알루미늄 차체나 카본파이버를 사용해 오리지널보다 오히려 더 나은 마무리를 보이는 차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파이버글라스제 보디에 머스탱의 파워트레인을 사용한다.

 이 밖에도 폴크스바겐 비틀을 바탕으로 만든 포르셰 356 레플리카도 인기 차종이다. 수퍼카의 레플리카도 적지 않다. 수퍼카 레플리카의 경우 한때 폰티액 피에로를 이용해 외형을 페라리처럼 개조한 차들이 많았다. 그러나 기본 차대가 되는 피에로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페라리가 많은 키트카 업체를 상대로 상표권과 저작권에 대한 소송을 강화하면서 지금은 람보르기니 레플리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런 레플리카 중에는 멀리서 보아도 뭔가 어설픈 차들도 있는 반면 엔진룸까지 충실히 재현해 웬만해서는 짝퉁임을 알아보기 어려운 정교한 복제품도 있다.

 차고가 달린 주택에 사는 것이 일반화된 미국에서는 손수 차를 손질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공임이 비싸기 때문에 DIY가 발달하기도 했지만 자동차를 매만지는 게 취미인 경우도 많다. 키트카 애호가들은 대체로 차를 매만지는 수준을 뛰어넘어 직접 조립까지 하는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키트카를 조립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대 이상의 차를 넉넉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많은 공구가 필요하다. 키트카의 차체와 부품을 차고에 펼쳐두고 주말마다 조금씩 조립하여 몇 년 만에 차를 완성하는 것은 미국에선 이상할 것이 없는 취미다. 독창적인 디자인의 키트카나 다른 차를 복제한 레플리카 모두 일반적인 양산차에 식상한 매니어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틈새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자동차전문 자유기고가=권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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