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선 후보 등록 최전방 戰士, 8인의 대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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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캠프에 가는 것까지는 좋아. 하지만 대변인은 절대 하지 마.”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측 장유식 대변인은 지난달 초 아내에게 “대변인 제안을 받았다”는 말을 꺼냈다가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청와대 보도지원비서관(16일 사임)이던 그의 아내 서영교씨는 오랫동안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을 지냈다. 누구보다 ‘업계’ 사정을 잘 아는 서씨는 왜 남편을 말렸을까. 대변인은 대선 후보의 입이다. 후보 다음으로 국민·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는 최전방 공격수이기도 하다.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말 못할 고민도 많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대변인 8명을 만나 그 이면의 삶을 들어봤다.

“상대 후보를 직접 공격할 때가 솔직히 제일 부담스럽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측 최재천 대변인은 22일 저녁 의외의 말을 했다. 불과 한 시간 전 그는 한나라당의 불참으로 BBK 관련 방송 토론이 취소된 데 대해 “한나라당의 공포를 이해한다”며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거짓과 협박을 일삼던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공멸하기 때문”이라고 맹공격하는 논평을 냈다. 그는 기자에게 “(강한 표현을 쓰면) 우리 지지층 15%는 좋아하지만 상대방 지지자나 중립적 유권자들은 나를 미워하게 된다”고 말했다. 험한 말, 거친 공격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본의 아니게 허언(虛言)을 하게 될 때도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측 박형준 대변인은 9월 말 이 후보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날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면담이 무산됐을 때 가장 진땀을 흘렸다. 박 대변인은 “미국 쪽에서 몇 번이나 확인을 해줬고, 내부 논의를 거쳐 공표한 것인데 어쨌든 결국 책임은 대변인의 몫”이라고 말했다.

상대 후보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 있을 때는 속사정이 더 복잡해진다. 이명박 후보 측 나경원 대변인은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여성 특보였다. 본인 스스로 “아주 특별한 특보”라고 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무소속이 된 이회창 후보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야 할 처지가 됐다. 나 대변인은 “처음엔 인간적으로 너무 괴로웠다”며 “그래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당연히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분들이 많이 만류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23일 기자들에게 보낸 e-메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이회창 후보는 ‘명예를 위해 출마하지 않는다면 국민을 대할 면목이 없을 것’이라는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마이크 앞에 섰을 땐 “해당 부분은 e-메일로 보냈다”며 말을 아꼈다.

정동영 후보 측 최재천 대변인은 문국현 후보에 대해 칼날이 무딘 편이다. 그는 “문 후보 쪽에서도 (합류) 제안을 받았던 게 사실”이라며 “사람인지라… 나름대로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과 소속이 같은 정 후보 측 김현미 대변인이 24일 “문 후보가 정 후보에 대해 (후보직을 사퇴하라는 등의) 예의 없고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데 대해 계속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수위 조절에 나섰다. 최 대변인은 “최근 들어 문 후보가 일부 무리한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적 표현이지 진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후보 측 장유식 대변인도 속마음이 편치 않다. 청와대 비서관직을 사임한 아내가 정 후보 캠프에 참여키로 했기 때문이다. 장 대변인은 “처음엔 별로 의식하지 않았는데 사실 서로 부담을 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부 단일화부터 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정 후보 측 김현미 대변인과 이인제 후보 측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국민회의 시절 함께 부대변인으로 일했던 사이다. 두 사람은 요즘 통합 문제를 놓고 으르렁대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평을 해보라 하면 “유 선배는 배짱이 있고, 조어 능력도 뛰어난 분”(김현미), “김 대변인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하는 사람”(유종필)이라며 찬사만을 내놓는다.

유 대변인의 말처럼 김 대변인은 ‘상황에 맞는’ 독설에 일가견이 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서민적 풍모를 보이기 위해 재래시장에서 흙 묻은 오이를 씻지도 않고 베어 먹은 것을 두고 “진짜 서민은 오이를 씻어 먹는다”라고 꼬집었던 게 대표적이다.

정당의 규모가 작을 경우 대변인이 느끼는 ‘체감 부담’은 더 크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측 박용진 대변인은 “이명박 후보 측이 선대위의 대언론 분야 인선을 발표하는 걸 보니 언론사 간부 출신만 수십 명이더라”며 “(그에 맞서 싸울 생각을 하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으로 지난달 19일 BBK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의 한국 송환이 결정됐을 때를 꼽았다. “기자들이 빨리 입장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사실 그때까지 사건 개요를 다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당시 “오늘부터 이명박 후보의 10월의 잠 못 드는 밤이 시작될 것 같다”고 짧게 브리핑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정치를 남녀 관계에 빗댄 표현을 종종 쓴다. 20일에도 신당-민주당의 통합 협상이 깨진 것에 대해 “신당은 민주당에 혼인빙자간음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꼬았다. 유 대변인은 “우리는 소수당이라 너무 점잖게 말하면 (언론이) 써주지 않는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어른 두셋이 싸우는데 옆에 애가 있으면 누가 쳐다보겠느냐”며 “하지만 애가 악을 써대면 쳐다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정치 경험 없이 대변인을 맡은 경우는 어떨까. 이회창 후보 측 이혜연 대변인은 방송 작가 출신이다. 2002년 대선 때 이 후보의 메시지팀에서 일했던 인연으로 중책을 맡았다. 그는 “대변인을 맡고 난생 처음 폭탄주를 마셔봤다”며 “기자들과 얘기하다가 ‘앗, 이 말은 하면 안 되는데’라며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의 대변인은 보통 오전 5∼6시면 일어나 하루 종일 회의와 브리핑을 반복한다. 자정을 훨씬 넘겨 귀가하는 일이 다반사다. 끊자마자 걸려오는 기자와 캠프 관계자들의 전화도 스트레스다. 정 후보 측 최재천 대변인은 “회의 때문에 1시간 정도 휴대전화를 못 받으면 20여 통의 부재 중 전화가 남겨져 있다”고 말했다. 여성 대변인들은 이 와중에 외모까지 신경 써야 한다. 이명박 후보 측 나경원 대변인은 “화장이 너무 밝다느니, 어둡다느니 하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아침에 너무 바빠 한쪽 눈썹을 찌그러지게 그리고 나온다거나 하면 당내의 방송 앵커 출신 의원들이 날카롭게 지적을 해준다”고 말했다.

동병상련 때문일까. 이들은 다른 진영의 동업자들에 대해 비교적 후한 점수를 매긴다. 이회창 후보 측 이혜연 대변인은 “이명박 후보 측 박형준 대변인과 이인제 후보 측 유종필 대변인이 논평을 알기 쉽게 잘 쓰더라”고 말했다. 유종필 대변인은 “이명박 후보 측 나경원 대변인은 강경한 얘기도 듣는 사람이 거부감 없도록 표현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박형준 대변인은 “후보 대변인은 아니지만 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말에 품위가 있고 상황 규정력이 뛰어난 분”이라고 평가했다.

문 후보 측 장유식 대변인의 아내인 서영교 전 청와대 비서관은 남편에게 “대변인은 주목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정치의 ‘꽃’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남들의 표적이 돼 오래 못 갈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상대 진영으로부터는 집중 공격을 받고, 내부에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나 보다.

김선하 기자 odinele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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