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쥐고 시장 흔드는 ‘IT 로비스트’ 늘어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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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21면

“지금 실리콘밸리 한 연구소에선 도롱뇽의 행동 연구가 한창이다. 바이오기술(BT)을 기반으로 한 의류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정보기술(IT)을 서비스 모델로 승부해야 한다.”

이종훈 정보통신 국제협력진흥원(KIICA) 소장

1983년 도미해 삼성전자·HP 등에서 근무하면서 실리콘밸리의 성장을 지켜봐온 이종훈(사진) 정보통신 국제협력진흥원(KIICA) 소장의 말이다. 2003년부터 정보통신부 산하 KIICA 운영을 맡고 있는 이 소장은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진 1%의 인재가 실리콘밸리, 나아가 미국을 움직이고 있다”며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다음 세대의 강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방문 한 이공계 대학생 20여 명과 함께한 좌담 자리에서다. 다음은 이 소장과의 일문일답. 이 행사는 인터넷 상거래 회사인 G마켓이 후원했다.

-앞으로도 기술혁신이 계속 일어날 것인가.

“기술로 따지면 나올 것은 다 나왔다. 앞으로는 스피드·용량·사이즈 싸움이다. 작게 만들되 속도 빠르고 용량 큰 제품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그러면서 융합(컨버전스)이 일어날 것이다. ‘다른 생각’이 중요하다. 구글을 봐라. 남들이 포털, 포털 할 때 검색 능력으로 시장을 휘어잡았다.”

-실리콘밸리는 한국의 벤처 생태계와 무엇이 다른가.

“일단 뛰어난 기술만 갖고 있으면 벤처 캐피털리스트의 투자를 받아 창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한국과 다르다. 한 번 실패하면 한국에선 재기하기 어렵지만 이곳에선 실패를 자산으로 여길 줄 안다는 것도 차이가 난다.”

-중국과 인도의 부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지난해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과 중국의 정보통신회사인 화웨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시스코에서 온 중국 출신 인재가 700명, GTE 출신이 1300명 근무하고 있더라. 이들이 미국에서 핵심 기술을 가져갔을 것이다. 이제 ‘중국보다 6개월 이상 앞선다’ ‘중국은 한국 기술의 95% 수준이다’ 같은 말은 의미가 없다. 제조업으로 중국을 이기긴 어렵다.”

-한국의 입지가 계속 약해진다는 말인가.

“아니다. 컨버전스된 첨단 제품으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기회다. 최근 한국의 대기업이 내놓은 월드클래스 제품을 봐라. 원천기술은 선진국에 비해 10분의 1인데 결과는 더 낫다. 한국에는 컨버전스 제품이 딱 맞는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실리콘밸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성공하는 기업의 조건을 말할 때 한국에선 첫째 차별화된 기술, 둘째 시장 기회, 셋째 훌륭한 인재, 넷째 투자자금을 가리킨다. 그러나 현실에선 순서가 거꾸로다. 돈이 두둑해야 사람도, 기술도 얻을 수 있다. 구글이 인수한 유튜브보다 한국의 판도라TV 기술이 낫다. 그러나 판도라TV는 능력 있는 벤처 캐피털리스트를 만나지 못했다. 중국 친구들 보면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다. 이런 ‘IT 로비스트’가 많이 나와야 나스닥에 상장하든, 회사를 매각하든, 한국 IT 회사가 실리콘밸리에서 꽃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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