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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KBS "인간의 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인간에게 땅의 의미는 무엇인가.
때로는 총칼이나 거래에 의해 수없이 주인이 바뀌고,때로는 삶의 터전으로,때로는 투기의 대상으로 인간의 모든 영욕과 애락을감싸안으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땅.
KBS대하드라마 『인간의 땅』(박병우 극본 심현우 연출)은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구한말,타의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멕시코 애니깽농장으로 팔려간 실단과 러시아에서 공산주의자가 돼야했던 금단 두자매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통해 인간과 땅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박경리가 인간과 교감을 이루고 있는 땅의 의미로 『토지』를 정의한 것처럼 『인간의 땅』은 인간의 실존을 위한 절대불가결의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구한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세기에 이르는 근.현대사를 소재로 해 자칫 늘어지기 쉬운 대하드라마로서 『인간의 땅』은 첫회부터 팽팽한 긴장감과 빠른 극전개로 시청자의 눈길을 고정시키는데 성공했다.
주인공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뒤엉키게 만드는 사건의 발단이 된연못 목욕장면을 다룬 첫회는 「손님끌기 작전」의 일환으로 다소과감한 노출이 시도됐지만 극의 전체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무리없이 소화됐다.
일본 헌병파견대장의 살해범 색출작업으로 이어진 2회는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감독이 『나생문(羅生門)』에서 보여주었던 상반된 진술의 중복재연방식과 범인을 일제의 하수인 덕구(조형기扮)로 몰아가는 극적 반전으로 드라마로서의 재 미와 함께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3부에서부터 금단의 손자인 샤샤(심신扮)와 장수명(김현석扮)의 손녀인 지애(김혜선扮)의 진술을 통해 묻혀졌던 금단과 수명의 행적이 하나둘씩 들춰지면서 노인이 된 실단(김혜자扮)의 회상과 함께 이야기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간다.
카메라는 시청자의 눈을 쉴새없이 구한말과 오늘,복사골과 미국.멕시코.러시아등 시공(時空)을 초월해 인도하지만 산만한 느낌없이 복선에 복선을 거듭하는 짜임새 있는 다중구조를 이뤄 간다. 젊은 시절의 실단과 금단역을 맡고있는 옥소리와 염정아도 한층 성숙된 기대이상(?)의 연기를 보여주고있다.
다만 카메라 효과만으로도 묘사가 충분한 상황에서도 극중인물의입을 통해 모든것을 설명하려는 필요이상의 친절이 구석구석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문어체의 대사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 눈에 거슬린다면 거슬리는 부분이다.
독립제작사인 ㈜제일영상이 50부작 올로케이션으로 만들어낸 『인간의 땅』은 아직 판단이 이른 감이 없지않지만 현실적인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의 독립제작 가능성을 연 작품으로 평가할만하다.
〈李勳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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