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수석 왜 사퇴했나] "王수석 연연" 비난에 중압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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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사퇴를 선언한 문재인 민정수석의 두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대통령이 힘든 시기에 떠나 가슴이 무겁다"고 했다. 많은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文수석은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퇴의사를 전달했다. 그는 "당초 4월 총선이 끝나면 그만두겠다고 대통령에게 몇 차례 밝혀왔다"며 "시기가 좀 빨라졌지만 그런 입장을 마무리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사퇴를 결심한 배경은 세 가지로 분석된다. 文수석은 '사직의 변' 자료를 통해 '민경찬 펀드' 등 각종 사건에 대한 야당.언론의 공세에 불만을 토로했다. 文수석은 "나와 閔씨의 통화는 그가 민정수석실에 출두하겠다고 약속했다가 핑계를 대며 '출두가 어려우니 해명서를 보내겠다'고 한 전화통화가 유일하다"며 "언론과 정치권은 느닷없이 청와대와 閔씨가 말을 맞춰 사전조율했다는 의혹을 대문짝만하게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의 노력을 살펴보지도 않고 문제만 생기면 늑장.부실 대응.축소.은폐라며 의혹을 제기해 참으로 맥이 빠졌다"고 토로했다. "권력의 자리, 정치적 자리인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는 동안 내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했다"고 했다. 文수석은 그간 "이런 국력낭비가 어디 있느냐"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실제 그의 건강은 심각한 상황으로 전해졌다.

같은 식구랄 수 있는 염동연 전 盧후보 정무특보의 비난과 열린우리당의 총선 출마 압력은 사퇴의 직접 계기가 됐다. '왕수석 자리에 연연해 총선 출마를 거부하고 있다'는 廉전특보의 공세에 文수석은 "내가 자리에 연연해 할 사람이냐"며 주변에 서운한 심경을 토로했다. 특히 당과 청와대 내에 '반(反)문재인' 기류가 확산돼온 상황에 文수석은 적잖은 압박감을 느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정치자금 수사 기류가 간파되지 않는 데 대한 정치권의 불만이 文수석에게로 집중돼 왔던 게 사실이다. 文수석은 이날 "검찰에 대한 정치권력의 간섭을 배제하는 데 일조한 게 가장 큰 보람"이라며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생겨난 인간적 아픔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文수석의 사퇴는 현 정권 권력구도의 중대한 변화도 예고하고 있다. 안희정씨의 구속과 함께 특검 대상에 오른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 등 386그룹이 청와대를 떠난 이후 盧대통령 권력 관리의 근간을 이루던 文수석마저 곁을 떠나게 된 때문이다. 창업공신 그룹의 청와대 1기 참모들이 거의 盧대통령의 곁을 떠난 모양새다.

향후 盧대통령이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2기 청와대 진용을 어떻게 구성, 운용해 나갈지 검찰 중립의 방패막이였던 文수석의 부재가 당정 분리.검찰 독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이다.

◇박정규 민정수석 내정자=경남 김해 출신으로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 광주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청주지검 영동지청장.대검 공보관을 지낸 뒤 2000년 서울 동부지청 형사3부장으로 검찰 생활을 접었다. 盧대통령과 고시공부를 함께 한 인연으로 인간적 신뢰가 깊다. 문재인 전 수석과도 사시 동기로 자주 어울렸다. 대검 공보관 시절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해 매일 아침 김밥 수십개를 주문, 이를 직접 들고 와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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