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홍대 앞 인디문화의 산실, 재건축에 내몰릴 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서울 홍익대 앞의 실험극장 ‘씨어터 제로’가 문닫을 위기에 몰리자 이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협동조합을 결성, ‘공연장 살리기’에 나섰다.

언더·인디 문화의 산실로 평가받는 씨어터 제로는 1998년 문을 연 이후 무용과 연극, 퍼포먼스 등을 무려 3천여회나 개최한 곳. 상업적인 문화 공간에선 보기 힘든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이 대다수를 차지해 홍대 부근이 예술의 거리로 자리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홍대앞 거리에서 라이브 클럽 DGBD를 운영하고 있는 이현숙씨는 "씨어터 제로가 탄생하면서 개성 있는 예술인들이 이곳으로 몰려 왔다"며 "최근 댄스 클럽 등을 중심으로 클럽 데이가 성행하고 각종 축제가 활발해진 것도 그 덕분"이라고 말했다. '클럽 데이'는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홍대 부근 클럽 10여곳이 합동으로 치르는 댄스 페스티벌.

*** 문화예술인들 발 벗고 나서

1백여평 규모의 씨어터 제로가 폐관 위기에 몰린 것은 지난해 8월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서부터. 4층 짜리 건물의 주인이 바뀌면서 "재건축을 할 예정이니 비워달라"고 요구해왔다. 씨어터 제로의 심철종 대표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험 예술인들이 문화적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자 값싼 대관료를 받아와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동안 임대료 6천만원, 월세 2백80여만원을 내왔는데 다른 건물로 옮기게 되면 현재보다 3배 이상의 돈을 내야 한다. 이 건물에서 나가게 되면 문닫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씨어터 제로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지난달 '홍대앞 문화예술협동조합'(홍문협)을 결성, 기금 마련에 나섰다. 홍문협에는 원로 연극인 무세중, 마임니스트 유진규, 가수 강산에.신해철씨 등 1백여명이 가입해 있다. 최근엔 소극장연합회장인 탤런트 유인촌씨가 1백만원의 후원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지역 예술인들은 "씨어터 제로만이 아닌 홍대 언더 문화 전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가 이 지역을 '홍대 문화 특구'로 지정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외부 자본이 유입돼 홍대 부근의 집값과 월세가 대폭 오른 상태다. 그 때문에 가난한 예술인들의 어려움은 더 커졌다.

*** "예솔가 떠난 문화특구 안돼"

홍문협 대표인 조윤석(전 황신혜밴드 멤버)씨는 "최근 홍대 부근은 경쟁적으로 기존 건물을 허물고 고층빌딩을 짓는 바람에 마치 공사판처럼 변했다. 예술가들이 떠난 뒤 문화특구로 지정해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