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합의 이렇게 본다-전문가의견반대 金泰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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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번 北-美합의는 한마디로 미국(美國)이 핵확산 금지조약(NPT)연장과 중간선거에 쫓긴 졸작품이다.
미국이 합의를 서둘러온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미국은 기존의 국제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내년에 만료되는 NPT를 연장해야 하는 입장에 있고,기존의 핵강국들에만 무한정 핵보유를 허용하는 불평등성에 대한 개도국(開途國)의 반발로 내심 당혹해 하고 있다.그러니 북핵(北核)타결은 NPT연장을 위해 필수적이다.아울러 미국은 北核문제와 관련해 중요성에 걸맞은 일관성이나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했고,강.온을 오가면서 심한 혼선만을 보여왔다.이는「계획된 당근과 채찍」이 아닌 북한을 모르는데서 비롯된「전략상의 난맥상」이다.그러니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기만회를 노리는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서둘러 북핵문제를 타결하고 싶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의 타결이 우리의 딜레마들을 경감시킬 전망은 없다.
특별사찰을 경수로 핵심장비들이 도착하는 시점까지 보류하고 6개월이내 연락사무소를 상호 개설하기로 합의했다면,우리의 안보이익과 직결되는 과거핵 규명은「물건너간 얘기」가 되고 만다.핵심장비 도착이란 국제 컨소시엄의 결성,계약체결.토목 공사 등 많은 절차를 거친 후에 이뤄질 일이다.북한은 향후 4~5년간「특별사찰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것이며,이미 다량의 플루토늄을 가진 북한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기간이다.미국이 수없이 반복해온「先 과거핵 규명,後 관계개선」약 속은 물거품이 되었고,앞으로 한국은 북한관련 일을 처리하기 위해 미국사무소에 매달려야 할 판이다.지난 5월 5㎿ 원자로에서 끄집어낸 폐연료봉 문제도 그렇다.제3국 이전시기도 경수로 제1기가 완공된 후로 양해됐다고 하는데,이는 7~8 년 동안 북한이 하나의 핵지렛대를지키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다.북한이 김일성(金日成)추도 1백일에 즈음해「작품」을 내놓고 정치선전을 강화할 것이고,이래 저래 한국의 모습은 더욱 왜소해질 것이다.이외에도 우리가 한국형 경수로를 공급한다면 비용은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남이 벌이 는 굿판에 돈만 대는」바보스러운 모습이 되지나 않을지.북한이 받을 것을 받은 후「오리발」을 내밀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불만족스러운 내용에도 불구하고「핵해결 없이는 대북(對北)경협도 없다」는기존의 연계정책을 풀어야 하는지등 우 리가 물어야할 질문은 수두룩하다.
이제 그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경고했던 일이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이제는 미국의 정책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따라다니는「뒷북외교」를 개선해야 한다.
NPT가 연장된 이후 미국이 스스럼없이 내놓을지도 모를 초강경책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先 과거핵 규명」을 외치다가 미국이 다른 그림을 내놓자,이를 수용할 명분을 찾기 위해 황급히「5대 원칙」이라는 것을 내놓는 모습은 차라리 한편의코미디였다.그러나 우리에게는 충정어린 경고들을 무시한 채「대안(代案)없는 홀딱벗기」정책으로 일관하면서 배알없이「한미공조(韓美共助)」만 외쳐왔던 스스로를 질타하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통일정책과 상충되는 연계정책을 풀어서 대북(對北)문호를 넓히는 일이나,수년간 2억달러 수준에 묶여 있는 남북한 교역을늘리는 일은 원래부터 빠를수록 좋은 일이었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은 이제부터라도 착실하게 한국변수를 개발해나가는 일이다.
국제정치에서는「지렛대가 없는 나라는 설움을 당한다」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가 있다.이 진리를 무시한 채 철저하게 자기부인(否認)의 길을 걸어온 나라가 설움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대북.대미 지렛대가 없는 것은 물론 시시각각 무서운 핵능력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인 우리의 처지가바로 그렇다.
요컨대 현재의 동북아 핵구도는 한국에만 결정적으로 불리한 것이며,이러한 구도가 지속되는 한 북한의 양심과 미국의 의리에만의존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는 개선되지 않는다.이제부터라도 주변국들이 한국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 는 외교지렛대를 만들어야 한다.새로운「한국변수」들을 만들어 기존의 핵구도에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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