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류사회로 가는 로드맵" 한인 변호사 한 해 1000명씩 탄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 해 미국에서 배출되는 한인 변호사가 1000명을 훨씬 넘어 한국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앞지르는 시대가 도래했다. 미주 중앙일보가 올해 2월과 7월 실시된 뉴욕주 변호사 시험 합격자 9267명의 명단을 분석한 결과 김.이.박 등 한국인 성(姓)을 가진 합격자가 393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2004년 277명이었던 것에 비해 3년 만에 60% 늘어난 셈이다.

바로 옆 뉴저지주에서는 한인으로 짐작되는 합격자가 119명이었다. 또 지난해 캘리포니아주에서 배출된 한인 추정 변호사는 305명이었다. 이들 숫자엔 한인과 성이 비슷한 중국계가 포함됐거나, 외국 이름을 가진 한국계가 빠질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큰 오차가 없을 것으로 이 신문은 분석했다. 결국 미국의 50개 주 중 뉴욕.뉴저지.캘리포니아 3개 주에서 배출되는 한인 변호사만 800명을 넘는다는 얘기다.

뉴욕한인변호사회 소속 배문경 변호사는 "이들 3개 주의 변호사 수가 다른 곳보다 월등히 많은 데다 한인 밀집지역이긴 하나 미국 전체로 보면 한인 합격자는 1000명을 훨씬 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국의 올 사법시험 2차 합격자는 1008명이었다. 지난해 미국 50개 주에서 실시된 변호사 시험에는 모두 8만3271명이 응시, 이 중 67%인 5만5394명이 합격했다. 미주 중앙일보는 미국 전체 변호사 시험 합격자 중 한인 비율을 평균 3~4%로 추정했다. 이대로라면 연간 1600~2200명의 한인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인 변호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한인 사회의 전문직 선호 현상 때문이다. 변호사.의사 같은 직종에 진출해야 인종차별의 벽을 깰 수 있다는 믿음이 한인 사회에 뿌리내려 있다. 실제로 9월 미주 중앙일보가 한인 청소년 6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67%가 "변호사.의사.회계사 같은 전문직을 택하겠다"고 답변했다.

미국 내 한인사회에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갖춘 변호사가 많아질수록 한인들의 주류사회 진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미국 주류사회에 뿌리를 내린 유대인들도 처음에는 세탁소.식품점 등에 종사하다 변호사.의사 등을 길러내면서 힘을 얻게 됐다"고 배 변호사는 설명했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한 뒤 공직이나 제대로 된 법률회사에 취직하는 한인 변호사는 전체의 10%도 안 된다. 이 바람에 한인 사회 내 변호사 포화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경력이 짧은 신참 변호사들 중 상당수는 사건을 제대로 맡지 못해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내거나 교통사고를 쫓아다니는 '앰뷸런스 변호사'로 전락하고 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