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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써니네 집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자동차 속에서였다.
『그렇다면 차가 어떻게 집에 와 있어요?』 내 말에 써니엄마가 운전대를 잡은 채로 소리없이 웃었다.마치 선생님에게 무언가를 추궁당하는 학생처럼.
지난밤에 양식집에서 나왔을 때,써니엄마는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나 보고는 알아서먼저 가라고 해서 버스를 탔는데,써니엄마는 어떻게 차를 집에까지 끌고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누가 대신 운전을 해줬나봐요…그 남자분이요…?』 써니엄마와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중년신사 하나가 아는 체를 했던 거였다.근사하게 생긴 멋쟁이 신사였는데 나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도 써니엄마에게 몹시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굴었다.그때는 이미 써니엄마가 내게 써니아빠에 대한 이야기 를 하면서 상당히 마신 뒤였다.써니엄마와 내가 식당을 나설 때 그 중년신사가 다시 나타나서 한마디 했던 거였다.정미씨가 직접 운전하고 가는 건 안되겠는데….
『이름이 정미세요…?』 써니엄마에게 내가 또 물었다.써니엄마가 모는 차는 김포공항의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달수는 뭐가 알고 싶은 거지.그래,내이름은 나정미고 어젯밤엔 그 사람이 날 집에 데려다주고 갔어.』 『언제…갔는데요?』써니엄마가 사이드브레이크를 거칠게 잡아당기고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그러다가 나정미씨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톡 치고는 반짝 웃으면서 나를 흘겨보았다.자,늦겠어.내려.
부산행 비행기에서는 써니엄마가 창가에 내가 통로 쪽에 앉았다.자리에 앉자마자 써니엄마가 내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그러면서 내 보호자인 것처럼 굴었는데,그건 의도적으로 「넌 아직 어린애야」라고 말하는 대신으로 그러는 것같았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다가 어느 순간에 훌쩍 날아올랐다.우린부산의 무슨 복지원이라는 곳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그곳엔 수천 명이나 되는 신원불명의 사람들이 갇혀 있다고 했다.
거기 있을 가능성이 많은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가볼 수는 없잖아 라고 써니엄마가 그랬다.
실종자 가족들이 실종자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기에 앞서 한번은들러봐야 하는 장소인가 보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할만큼은 했다고 자위하기에 필요한 절차인지도 모를 일이었다.마치 전혀 회생할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며칠씩 기다려보는 것처럼.승규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승규가 그랬었다.그냥 정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래보는 거지뭐.써니 엄마는 고개를 돌리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나정미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지만 더이상물어보지는 않았다.여러가지 점에서 써니엄마는 써니와 닮아 있었다.어딘가 조금 불안해보이고 왠지 조금 아슬아슬해 보이고 조금은 늘 쓸쓸해보인다는 점에서.
『뒤로 가면 흡연석이 있나요…?』 화장을 진하게 한 스튜어디스에게 물었더니 내게 귓속말로 답해주었다.
『아직 담배피울 나이가 안된 것같은데요.흡연석도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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