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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입대 긴행렬-이라크 이철호 특파원 현지서 1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천년을 이어온 아라비안 나이트의 고도(古都)바그다드.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밤은 전쟁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다.자정이넘은 시간에도 가로등과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불빛은 도심(都心)을 관통하는 티그리스강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하늘을 가르는 서치라이트의 궤적(軌跡)만이 혹시 닥쳐올지 모를 전쟁의 긴박성을 예고할 뿐이다.
긴장은 오히려 서편의 요르단쪽이 더하다.
시리아 사막 9백㎞ 고속도로를 달려오면서 취재진 일행은 총을든 요르단군인들로부터 일곱번이나 검문을 받았다.
그러나 이라크의 국경검문소를 지나 바그다드에 이르기까지 딱 한번 검문이 있었을 뿐이다.
바그다드 市경계 검문소 초병은『잘 가라』는 인사말까지 잊지않아 긴장했던 일행을 무색케했다.
바그다드는 정상적인 도시기능을 다하고 있었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에 놓인 1백23개의 교량은 걸프전(戰)때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모두 파괴됐지만 다시 말끔히 복구돼 있었다. 24시간 전력공급은 물론 버스와 택시도 오전6시부터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다.그러나 이라크 경제상황은 국경을 넘으면서부터 한눈에 어려움이 느껴졌다.국경검문소에는 요르단을 향해 대형 유조트럭 수십대가 줄지어 있었으며 이라크를 향해선 닭과 밀가루를 실은 트레일러가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경제봉쇄 속에서도 유일하게 허용된 요르단과의 국경무역 현장이다.
그러나 이 국경교역으로 이라크 인구 1천8백만명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물가는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올라 있고 암시장이 폭넓게 형성돼 있다.
달러당 공식환율은 0.3디나르지만 암시장에서는 6백디나르이상에 거래되고 중앙은행에서도 실제로 달러당 5백40디나르에 환전해 주었다.
계란 한줄(10개)이 9백50디나르인 상황에서 공무원조차 5달러가 채 안되는 평균 2천디나르의 월급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바그다드 도심에서 한 발 들어선 골목길에는 노점상들이좌판을 놓고 줄지어 있다.
골동품과 가재도구등 집안에서 돈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든 갖고나와 파는 것이다.
결혼 패물과 한때 흥청거리던 석유호황때 쌓아놓았던 귀금속들이「이라크 중산층의 몰락」을 상징하고 있었다.
비공식 통계로 바그다드 인구 3백50만명의 절반이상이 실업자인 마당에 신통한 구매력을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다.
걸프전이전에는 1만군데에 이르는 고대 유적지연간 관광수입만도80억달러에 달했지만 지금은 외국관광객도 끊겼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만난 이라크인들은 비참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미국등 서방진영으로 돌리고 있었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압둘 사반(21)은『이라크의 베드윈족은 수천년동안 양고기,밀,양젖으로 만든 치즈로 버텨왔다.오일달러로 흥청거리던 생활은 물론 경제봉쇄로 인해 끝났다.그러나 양과 초원이 있는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생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라크는 4년간의 경제봉쇄 조치에 따라 다시 자급자족경제로 돌아가고 있다.
이라크의 경제가 앞으로 얼마나 버틸지 아무도 모른다.
바그다드 주요 거리마다엔 미국과 싸우기 위해 자원입대하는 15~18세의 청소년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바그다드 TV에서는 연일 결사항전을 외치는 고함이 이어진다.
그러나 바그다드 어디를 가든,누구와 마주치든 이란-이라크전부터 시작된 14년간 고통의 세월을 쉽게 지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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