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공항, 한국인에게 '입국 지옥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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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부터 일본을 찾는 외국인들은 공항에서 미국 수준의 강도 높은 입국 심사를 받게 된다. 우선 양쪽 인지(검지 손가락)를 지문 판독기에 놓고 지문을 채취 당해야 한다. 또 지문 인식기 위에 설치된 카메라에 얼굴도 찍힌다. 이 사진은 일본 정부가 보유 중인 블랙 리스트는 물론 여권 사진과 대조하게 된다. 특히 지문은 일본 체류 기간 중 외국인 관리와 범죄 수사에 활용된다.

재일(在日) 외국인 거주자들과 이들의 지지자들이 20일(현지시간) 도쿄 시내 일본 법무성 청사 앞에서 일본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에 대해 갓 시행된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AP]

개정 입국관리법에 따른 이번 조치로, 일본은 미국과 함께 입국이 가장 번거로운 나라가 될 전망이다. 미국은 이미 2003년부터 지문 날인과 사진 촬영을 강행해왔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 검색으로 방문객의 신발까지 일일이 벗겨 검사해 왔다. 일본이 입국 관리를 강화하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미국은 입국 외국인의 지문 채취를 한층 더 강화하기로 했다. 29일부터 지문 채취 대상을 양쪽 인지에서 열 손가락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이 조치는 워싱턴의 덜레스 공항을 시작으로, 내년 초 미국의 주요 9개 공항으로 확대 실시된다.

한국인은 미국과 일본의 이번 조치로 특히 더 고통 받게 될 것 같다. 현재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연간 100여만명에 이른다. 전체 외국인 방문객 가운데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 나라별로는 5위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번에 미국이 입국 관리를 강화하는 뉴욕(존 F 케네디)과 시카고(오헤어), 샌프란시스코 국제 공항 등 10개 공항은 한국인이 특히 많이 이용하는 곳들이다. 반면 일본 방문객 중 한국인은 전체의 30%에 가까운 240만명에 달한다. 압도적인 1위다. 이번 입국 관리 강화 조치로, 미국과 일본 공항은 한국인들에게 ‘입국 지옥문’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겨울 방학을 앞두고 미국이나 일본을 여행할 계획이 있는 이들을 위해 두나라 입국 관리 조치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 미ㆍ일이 방문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국 관리를 강화하는 이유는. 반발은 없나.
"물론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 때문이다. 19일 지문 채취 강화 방침을 밝힌 것도, 2003년 지문 채취와 사진 촬영 조치를 주도한 곳도 미국의 국토안보부였다. 일본은 미국의 조치를 따라가고 있는 양상이다. "

-입국 관리 강화에 대해 반발은 없나.

"현재 외국인 방문객의 반발도 크지만 미ㆍ일의 재계와 관광업계의 반발도 그에 못지 않다. 두 업계는 이 조치로 사업상의 방문객이나 관광객이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게다가 미국 공항은 오래 전부터 입국 심사대 직원의 고압적 태도로 악명이 높았다. 나라 안팎의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입국관리 강화 조치의 테러 예방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 미ㆍ일의 입국 관리 강화 조치의 차이점은

"미국이 주요 10개 공항에 대해 모든 손가락의 지문을 채취하기로 함에 따라 다시 일본보다 한 발 앞서 입국 관리를 강화한 셈이다. 일본의 경우 일본 영주권자라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번 조치의 예외 대상이 될 수 없도록 했다. 이 때문에 재일교포 단체인 민단에서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영주권자의 경우 지문 채취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 언제쯤 돼야 미국 비자라도 면제돼 입국에 걸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비자 면제 협상이 진행돼 왔다. 그 결과 미국은 비자 없이 미국에서 90일까지 체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원칙에는 합의한 상태다. 그러나 전자여권 발급과 여행자 정보 공유 문제가 남아있다. 현행 여권을 전자여권으로 바꾸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한국인 방문객에 대한 정보 공유도 국내법과의 충돌 문제가 남아 있다. 현행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 10조에 따르면, 개인정보 보유 기관은 ‘법이 정한 예외 사유를 제외하고는’ 보유한 정보를 다른 기관에 제공할 수 없다. 미국에 정보를 넘겨주는 것이 법이 정한 예외 사유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실무자 협의회에서도 두 가지 쟁점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양국이 방문객 정보 공유 문제에 대해 합의하고, 전자여권까지 보급되려면 2009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관측이다. "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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