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간 수출선박 통관도 못하고 회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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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9시(현지시간) 멕시코 만사니요 항구. 금호타이어 박종욱 멕시코 지사장은 허탈한 심정으로 선적 작업을 지켜봤다. 20일간 뱃길을 달려온 수출품을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내게 된 것이다. 납기를 못 맞추어서도, 불량품이어서도 아니다. 자유무역협정(FTA)이 문제였다.

금호의 수출용 타이어를 싣고 한진해운 소속 선박이 부산에서 멕시코로 출항한 것은 지난해 12월 21일. 지난달 12일 만사니요 항에 도착했다. 컨테이너 34개를 가득 채우는 물량으로 1백20만달러어치였다.

朴지사장은 이 배가 태평양을 건너고 있던 지난해 말 '멕시코 정부가 올해부터 자국과 FTA를 맺지 않은 나라 제품에는 긴급관세를 부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재 관세(통관가격 기준 23%)에 긴급관세(평균 63%)를 더 매긴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국산 승용차 타이어의 현지 소비자가격은 1본에 2백달러에서 2백50달러로 뛰게 된다. 반면 무관세 혜택을 받는 미국이나 유럽산은 2백10달러선이다. 수출을 포기하라는 통보나 다름없었다.

朴지사장은 멕시코에 도착한 타이어를 일단 하역했다. 어떻게든 팔아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현지 딜러들이 "한국산은 가격 경쟁력을 잃어 판매가 불가능하다"며 수입 통관 자체를 거부했다.

통관도 못한 채 항구에 쌓아 놓다 보니 컨테이너 한개당 하루 80달러의 보관료까지 물어야 했다. 朴지사장은 "한국에서 한.칠레 FTA 비준안을 처리하면 혹시 멕시코 정부를 설득할 길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반송을 미뤘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9일 FTA 비준안은 처리가 무산됐다.

결국 본사에서 반송 지시가 떨어졌다. 그나마 컨테이너 34개 중 19개는 미국과 캐나다로 헐값에 넘겼으나 나머지 15개는 꼼짝없이 한국으로 반송해야 했다. 수출을 못하게 된 것은 물론 컨테이너 보관료와 개당 5천달러인 선박 운임만 날린 셈이 됐다.

한국타이어도 컨테이너 13개 분량의 제품(약 40만달러)을 지난해 12월 멕시코로 수출했다가 금호에 앞서 일주일 전 국내로 반송했다. 타이어공업협회 이성은 부장은 "FTA 비준 지연으로 멕시코는 물론 중남미 시장을 완전히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윤영주 멕시코 지사장은 "FTA로 무역장벽을 터는 대세에 못 끼면 수출길이 아예 막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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