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 공연장 순례] 살라 상 파울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96년 가을 브라질 상파울루 주지사 마리오 코바스는 집무실에서 지휘자 존 네슐링을 만났다. 문화국장 마르코스 멘도카도 함께 배석했다. 코바스는 이 자리에서 네슐링에게 상파울루 심포니 음악감독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오스트리아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네슐링은 이탈리아 팔레르모 마시모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유럽 무대에서 활동 중이었다. 유럽으로 떠나기 전 상파울루와 리우 데 자네이루 극장에서 오페라 지휘자로도 활약했었다. 그는‘거미 여인의 키스’(1995년)등 영화음악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교향악단 발전의 선결 조건은 심포니 전용홀

갑작스런 제안에 놀란 네슐링은 코바스 주지사에게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단원들의 월급을 최고 수준으로 올려주고 심포니 전용홀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인구 1800만명의 상업도시 상파울루는 그때까지 변변한 콘서트홀 하나 없었다. 1954년 창단한 상파울루 심포니는 명색이 ‘주립 교향악단’이었지만 마땅한 무대가 없어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연주를 해야 했다. 연습도 학교 강당을 빌려야 했다. 번번이 학교 교장과 학부모들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 고생이 심했다.

브라질 하면 축구의 나라다. 지휘자 네슐링은 “심포니 전용홀 없는 오케스트라는 전용 잔디구장 없는 프로 축구팀이나 마찬가지다. 자갈과 모래로 덮인 맨땅에서 연습하는 축구팀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코바스 주지사는 3500만 달러(약 340억원)의 예산을 내놓았다. 1997년 네슐링은 약속대로 상파울루 심포니의 사령탑을 맡기로 했다.

버려진 기차역 대합실을 콘서트홀로 개조

상파울루는 마침 대대적인 도심 재개발 계획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시당국의 눈에 들어온 건물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거의 사용하지 않고 방치돼 오던 ‘훌리오 프레스테스’역(Estacao Sorrocabana Ferrovial Julio Prestes) 대합실이었다. 1938년 커피 재벌이 지어 산토스 항구로 커피를 실어나르던 소로카바나 선이 출발하는 기차역이었다. 1971년 국영 철도로 병합되었고 1980년대부터 시영철도(CPTM)의 종착역으로 지금도 기차가 다니고 있지만 주변은 슬럼가로 낙후되고 말았다.

대합실로 쓰던 텅빈 공간에는 야자수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전성기에는 실제로 간이 음악회가 열리던 곳이다. 이 역은 철도원 출신으로 상파울루 시장과 대통령 후보를 지낸 훌리오 프레스테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건축가 크리스티아노 스토클러 다스 네베스는 루이 16세 스타일의 신고전주의 양식을 구사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와 뉴욕 주에 있는 기차역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64∼83년 군부 독재 시절엔 반정부 투쟁을 벌이던 시위 주모자들을 잡아 들이던 정치사회안전국이 이곳에 본부를 차리기도 했다.

콘서트홀로 개조하기 전의 ‘훌리오 프레스테스’역 대합실

방진 공법으로 기차 소음 차단

음향 컨설턴트 존 러셀은 프레스테스 기차역 대합실을 방문한 뒤 무릎을 쳤다. 장방형의 구조 자체가 빈 무직페어라인 등 구두상자 모양의 19세기 유럽의 전형적인 콘서트홀에서 볼 수 있는 규격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건축가가 수십년 후에 콘서트홀로 개조할 것을 염두에 두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가능할 정도였다.

1999년 7월 9일 존 네슐링이 지휘하는 상파울루 심포니가 말러의 교향곡 제2번‘부활’을 연주했다. 버려진 기차역 대합실이 첨단 시설을 갖춘 콘서트홀 ‘살라 상파울루’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객석에는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소 브라질 대통령 내외도 참석해 감격의 기쁨을 나눴다.

‘살라 상파울루’와 같은 건물에는 상파울루 심포니의 연습실과 18, 19세기 브라질 작곡가들의 작품과 관련 기록을 보관 중인 문서보관소가 들어서 있다. 이 모두를 가리켜 ‘훌리오 프레스테스 문화 센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콘서트홀로 바뀐 대합실은 철도와는 무관하지만 지금도 불과 3m 떨어진 곳에 기차가 다니고 있다. 바깥 소음과 진동을 차단하기 위해 방진 공법을 채택했다. 건물 바닥을 판 다음 여기에 흡음력이 뛰어난 브라질산 호두나무 원목으로 싼 두께 15㎝의 콘크리트 벽체 안에 네오프렌(합성고무의 일종)을 넣었다. 콘서트홀 객석 주변을 여러개의 문과 대기실로 겹겹히 에워쌌다. 기차역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길은 두터운 유리벽으로 차단했다.

무대, 음향반사판, 객석 의자 등 ‘움직이는 공연장’

32개의 코린트 양식의 대형 기둥 사이에 22개의 발코니석과 박스를 배치했다. 무대와 객석 의자 높이를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갖췄다. 높이 25m의 가변형 천장 패널 15개는 무게만 각 7.5t짜리로 위 아래로 움직인다. 콘서트홀 내부의 용적을 1만2000㎥에서 2만8000㎥까지 조절해 공연 장르에 따라 잔향(殘響)시간을 맞춘다. 잔향 시간은 길이 8m짜리 26개의 헝겊 배너로도 조절할 수 있다.

지붕은 기존의 구리를 걷어내고 열과 소음을 차단하는 타일, 유리 대신에 폴리카보네이트로 천장을 덮었다. 천장과 무대, 바닥, 음향반사판, 발코니석, 에어컨 시설등 새로 보태진 구조물의 무게는 무려 230t. 이 엄청난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상부 구조도 보탰다. 실내 정원으로 꾸며진 옛 대합실 주위로 건물을 받쳐주던 돌기둥을 1000t의 철제빔과 4.5t의 모래를 추가해 보강했다. 공사에는 1만 5000㎥의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다. 12층짜리 건물 12개를 지어도 충분한 건축 자재다.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콘크리트에 사용된 모래도 1926년 공사 때와 같은 것을 구했다.

◆공식 명칭: Sala Sao Paulo

◆객석수: 1499석(입석 10석 별도)

◆개관: 1999년 7월 9일 (기차역 건물은 1938년)

◆건축가: 넬슨 듀프레 (기차역 건축은 Cristiano Stockler das Neves)

◆음향 컨설팅: 크리스토퍼 블레어(ARTEC)

◆홈페이지: www.salasaopaulo.art.br

◆상주 단체: 상파울루 심포니 오케스트라 Oreustra Sinfonica do Estado de Sao Paulo
((OSESP), 빌라 로보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

◆부대시설: 리허설 룸, 레코딩 스튜디오, 음악 아카이브

◆전화: +55-11-3337-5414

◆주소: Sala Sao Paulo, Praca Julio Prestes, Luz, Sao Paulo, Brazil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