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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부자의 평균 연령은 46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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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중국은 활화산이다. 주가도, 물가도, 부동산도 폭출하듯 값이 뛴다. 뿜어져 나온 불기둥은 곧 돈다발이 된다. 돈벼락을 맞는 일이 실제로 가능한 곳이 중국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벼락부자가 속출하는 이유다. 1년 사이 재산이 서너 배씩 불어나는 것은 예사다. 그렇다고 누구나 돈벼락을 맞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라고 절대 허술하지 않다. 남다른 판단력과 두둑한 배짱, 그리고 기발한 전략이 있어야 돈벼락을 맞을 자격이 생긴다.

중국 부자는 미국 부자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우선 나이가 어리다. 11월 1일자 포브스 중국어판에 따르면 중국 내 상위 400명 부호의 평균연령은 46세다. 미국은 64세다. 자수성가형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400명 부호 가운데 99%가 스스로 창업해 부를 일궜다. 미국의 경우는 67%다. 변화가 많은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400대 부호 가운데 올해 처음 등장한 신인이 중국의 경우는 전체의 37.5%(146명)인 반면, 미국의 신인 등장률은 20%를 밑돈다.

통계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역동적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타이틀을 이제 중국에 넘겨줘야 할 판이다.

중국 부자들의 성공 스토리는 드라마 그 이상이다. 격동하는 시대 흐름을 절묘하게 타기도 하고, 혹은 거스르기도 하며 부를 거머쥐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다. 절대 남들처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양궈창(楊國强·52)이다. 그는 부동산 기업인 비구이위안(碧桂園)의 최고경영자다. 자신의 지분 전부(70%)를 딸(25)에게 넘겨 딸을 ‘중국 최고의 갑부’로 만든 인물이다. 그는 ‘거품’ 덕분에 돈과 인연을 맺는다. 1993년 200채의 별장을 짓는 공사의 마감일을 맡았다. 이때 국무원이 경기 진정책을 발표했다. 경제에 거품이 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규 건축·건설이 모두 금지됐다. 경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2억 위안 이상의 거금이 투입된 별장엔 찬바람만 지나갔다. 공사 대금을 받을 일이 막막해졌다. 이때 건축주가 내놓은 제안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팔아 가져라!” 줄 돈이 없으니 별장을 팔아서 공사 대금을 챙겨가라는 얘기다. 그는 지역 명사를 찾아가 ‘비구이위안’이란 이름과 함께 글씨를 받았다. 중국 최초로 ‘브랜드 주택’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는 주변의 한 귀족학교에 주목했다. 농촌 지역에 세워진 학교이고, 예치금이 15만 위안이나 되는데도 부모들은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못해 안달했다. ‘귀족’이라는 이미지가 먹힌 것이다. 양궈창은 무릎을 쳤다.

1994년 양궈창은 광저우(廣州)의 전 매체에 ‘자녀에게 투자하십시오!’라는 광고를 냈다. 비구이위안 안에 세울 ‘비구이위안 귀족학교’를 알리는 내용이다. 광고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1차 모집에 무려 1300명이나 몰려들었다. 처음 18만 위안으로 책정했던 예치금도 30만 위안까지 올랐다. 단숨에 3억9000만 위안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그 다음 프로젝트의 광고 카피는 ‘5성급 호텔을 드립니다’였다. 부자들의 고급 취향을 노린 전략이다. 이 광고는 또 한번의 대박을 터뜨렸다. 이때부터 ‘양궈창 모델’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아파트+학교+클럽하우스’가 결합된 새로운 개념의 아파트를 말한다. ‘양궈창 모델’은 짓기도 전에 매진됐다. 그는 선금을 받고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배추를 팔듯 아파트를 팔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1995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하나씩 ‘비구이위안 단지’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광둥(廣東), 창사(長沙), 네이멍구(內蒙古)에 모두 22개의 비구이위안 단지를 조성했다. 현재 보유 중인 건축용 토지만도 8000만㎡가 넘는다. 홍콩섬(7800만㎡)보다 더 크다. 비구이위안의 시장가치는 이미 2000억 위안(약 26조원)을 넘어섰다.

‘남다르기’로 따지자면 궈광창(郭廣昌) 푸싱(複星)집단 회장도 누구 못지않다. 상하이에 있는 푸싱의 사옥은 1992년 3.3㎡당 5000위안에 사들인 것이다. 건물이 너무 낡은 데다 당시 부동산 경기가 바닥이어서 가능했던 금액이다. 주변에선 극구 만류했다. 골칫덩이 건물을 인수해 회사 부담만 늘릴 것이란 직언이 이어졌다. 궈광창은 소신껏 밀어붙였다. 지금 사옥의 가격은 3.3㎡당 4만2000위안이다. 8배 이상 올랐다.

”상하이의 잠재력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늘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살 수 있는 것은 빌리지 않고, 빌릴 수 있는 것은 짓지 않는다’는 원칙이 분명하다.

2001년 상하이의 명물 쇼핑몰 위위안(豫園)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다. 위위안은 국유기업이다. 워낙 골칫덩이여서 정부가 매물로 내놓은 건물이다. 국유기업 특유의 비효율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조직이다. 궈광창은 선뜻 나섰다. 그 후 위위안은 매년 평균 60%의 수익 신장을 기록했다. 3위안짜리 주식은 지금 32위안이 됐다.

2003년 더방(德邦)증권, 2004년 금채굴 업체인 산둥자오진(山東招金)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다. 2003년은 주가가 바닥이던 시절이다. 누구도 매물로 나온 더방에 입질하지 않았다. 그러나 궈광창은 인수를 결정했다. 주변의 반대가 빗발쳤다. 다른 업계에서도 “도대체 왜 사는 거냐”고 물어올 정도였다. 푸싱은 3억2000만 위안을 투자해 40억8000만 위안 규모의 더방 지분 32%를 인수했다. 이듬해 더방은 1억 위안의 수익을 안겨줬다. 현재 더방의 시가총액은 63억 위안으로 뛰어올랐다.

2004년 금 시장이 얼어붙었다. 온스당 400달러를 밑돌았다. 궈광창은 “우리 인구는 13억이다. 그런데도 금 소비량은 인도의 3분의 1, 일본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황금을 팔 공간은 무궁무진하다”며 역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산둥자오진을 인수했다. 1억8000만 위안을 들여 지분 100%를 인수했다. 현재 산둥자오진의 시가는 15억 위안을 넘어섰다. 푸싱 그룹의 현재 시가총액은 약 600억 위안. 그러나 궈 회장은 ”1∼2년 내에 1000억 위안을 넘어설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중국 최대의 가전판매체인점 쑤닝(蘇寧)전기의 장진둥(張近東) 회장 역시 뚝심의 사나이다. 눈앞의 이익이 분명한데도 더 큰 베팅을 위해 그 기회를 팽개치는 데 선수다. 1990년 당시엔 컬러TV, 냉장고, 세탁기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엉뚱하게 ‘사치품’인 에어컨 도매상을 냈다. 식구와 친구들이 나서 만류했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난징(南京) 외곽 호젓한 곳에 661㎡(200평) 규모의 점포를 빌려 쑤닝 가전품 판매점을 냈다. 곧바로 에어컨 수요가 폭발했다. 그는 개업 첫해에 매출 6000만 위안, 순이익 1000만 위안을 기록했다. 그의 나이 불과 28세였다.

2000년 그는 “3년 내에 대리점 1500개를 열겠다”는 장기 목표를 발표했다. 당시 주변에서 “1년에 최소한 3000만 위안은 받을 수 있다”며 난징 중심가에 있는 쑤닝 건물을 임대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4000만 위안을 손해 보더라도 체인 매장은 계속 늘어나야 한다”며 전 건물을 쑤닝 전기매장으로 꾸몄다. 선택은 주효했다. 2001년 평균 40일만에 1개 점, 2002년 평균 20일만에 1개 점, 2003년 평균 7일만에 1개 점, 2004년 평균 5일만에 1개 점, 2006년 평균 이틀만에 1개 점씩 대리점이 늘어갔다. 연 3000만 위안의 임대료로 내놓을 뻔했던 난징의 쑤닝 본점 매장은 1년 판매량이 10억 위안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기업문제 분석가인 장후이(張暉) 박사는 “중국 부호들의 특성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남들과는 늘 다르게 선택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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