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학교 통섭원(統攝院)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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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02면

14~15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열린 세미나 ‘마음의 피뢰침’.

통섭(統攝)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치용어인 줄 알았습니다. 통치, 섭정 같은 단어가 떠올라서였을까요. 알고 보니 지식사회의 얘기더군요. 사물에 널리 통하는 원리로 학문의 큰 줄기[統]를 잡는다[攝]는 뜻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 떠오른 새 유행어라 하기에 ‘매거진’ 창간호(3월 18일자)에서 다뤘습니다.
‘사물에 널리 통함 또는 사귀어 서로 오고 감’이란 뜻을 지닌 통섭(通涉)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화두더군요.

순화동 편지

어렵다면 어렵다고 할 수 있는 통섭의 뜻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한마디로 “김치나 장 등 발효식품 같은 것”이라고 풀었습니다. 김치가 발효균을 만나 아삭아삭 익는다든가, 된장이 효모균 덕에 구수하게 맛 드는 작용이 학문 사이에서 일어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싶었죠. 최 교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떡처럼 한데 붙어야 한다”고도 말하더군요.

14~15일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중극장에서 열린 ‘예술과 테크놀로지 국제 심포지엄’이 통섭을 다룬다 하여 가봤습니다. 세미나의 주제는 ‘마음의 피뢰침(Lightning Rod of Mind)’. 과학기술이 예술창작 과정에서 우리 마음의 전율을 송신해주는 피뢰침과 같은 구실을 한다는 뜻을 담았다는군요. 이 분야에서 손꼽히는 국내외 전문가 13명이 따끈따끈한 최신 통섭의 흐름을 전하는 현장은 늦가을 차가운 날씨를 잊게 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오랜만에 강의실을 찾아서일까요. 뭔가와, 누군가와 통하고 싶다는 통섭의 의미가 저절로 가슴속으로 파고들더군요. ‘학문의 국경을 여권 없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일’이라는 비유가 오히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은 우물을 파기 위해 여럿이 함께 넓게 파자는 거죠. 잘게 쪼개진 현대 학문의 배타성을 이겨내 보자는 의지 같은 것으로 이해가 되더군요.

날로 높아지는 학문 사이의 벽을 깨서 말이 통하게 하자는 의미 정도라면 일반인도 받아들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앤 나이튼(네덜란드 ‘가변미디어협회’ 예술개발부 운영자)은 학제간(inter-disciplinary) 제휴연구소를 실험해 왔는데 “통섭이 학문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사회현실에 참여하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고 말하더군요.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 황지우)는 2009년도에 일곱 번째 원으로 ‘통섭원’을 세우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미 있는 음악원·미술원·연극원·영상원·무용원·전통예술원을 아우른 시너지 효과가 날 법한 구상인데요.

눈이 초롱초롱한 학생들이 ‘피뢰침’을 맞은 듯 무대 위 영상과 연설에 집중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온몸으로 고압 전류가 흘러 들어온 것처럼 찌릿했습니다. 문득 ‘공부’란 제 몸을 낮춰서 남과 전류가 더 잘 통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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