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DVD 골라드립니다’- 폭력의 역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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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14면

톰은 시골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어느 날 식당을 찾은 악당과의 일전은 그의 운명을 뒤바꾼다. 아니, 원위치로 돌려놓는다. 졸지에 영웅 취급을 받게 된 그에게 과거의 인물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존 와그너와 빈스 로크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인 ‘폭력의 역사’는 얼룩진 과거로부터 등을 돌려 새 삶을 찾은 남자가 과거와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화질 ★★★★ 음질 ★★★★ 부록 ★★★★

폭력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에서 그리 낯선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크로넨버그는 장기였던 신체변형 소재나 비현실적인 분위기에서 멀리 떨어져,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남자와 가족의 현실적인 이야기에 집중한다. 크로넨버그는 “폭력을 즐긴다면 그 대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영화의 주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폭력의 역사’는 폭력에 대한 욕망과 폭력적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관객에게 이끌어낸다.

‘폭력의 역사’의 DVD는 크로넨버그에 대한 선입견을 없앨 기회를 준다. 영화로만 크로넨버그를 접한 사람들은 그를 기괴하고 무서운 인물로 상상하기 십상인데, DVD를 통해 만나는 크로넨버그는 다정하고 친절한 인상이니 말이다. 음성해설을 맡아 영화의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짚어준 그의 진면목을 메이킹필름(66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배우 및 스태프와 여유 있게 촬영현장을 꾸려나가는 그의 모습은 예상 밖이다.

삭제장면(3분)과 장면 메이킹필름(7분)을 세심하게 준비하면서 DVD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고 말하고, 칸영화제 기록영상(9분)에서는 영화제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상업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원래 의도였다고 밝히며, 미국판과 해외판의 차이가 두드러진 두 장면의 설명(2분)에까지 일일이 관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우리가 잘 몰랐던 거장의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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