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마라톤 영웅 황영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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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사회는 그 구조적 특성때문에「스타」는 만들어낼 수 있으되「영웅(英雄)」을 만들어내기는 어렵게 돼있다.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가장 뛰어난 재능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지만「스타」는 대중에 의해 만들어질 수도,하루아침 에 잊혀질 수도 있는 반면「영웅」은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쉽게 잊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스타와 영웅의 그같은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게 바로 스포츠라 할 수 있다.우리 시대 우리사회는 수많은 스포츠 스타를 가지고 있지만 과연 진정한 의미로서 스포츠 영웅으로 부를만한 인물이 있는가를 따져보면 자명해진다.모든 스포츠에는 상대가 있게 마련이고,그 상대를 딛고 일어설 때 비로소 승리의 쾌감을 안겨주지만 궁극적으로 스포츠는「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도 영웅을 탄생시키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한다. 수없이 많은 스포츠 종목 가운데 마라톤만큼「자신과의 싸움」이 중요시되는 종목도 찾아보기 어렵다.2시간이상 42.195㎞를 줄곧 달려야 하는 마라톤 경기에서 극기(克己)의 정신을갖추지 못한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기란 불가능하다.순 위나 기록에 관계없이 완주(完走)한 선수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그런 점에서 마라톤이야말로 스포츠의 영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종목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번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우승한 황영조(黃永祚)선수에게 주저없이「영웅」의 칭호를 부여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있다.91년 영국(英國)셰필드의 여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대회신기록으로 우승한뒤 92년 벳푸(別府),지난 4월의 보스턴대회에서 잇따라 한국신기록을 경신했다는 점,그리고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의 금메달에 이은 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 획득등 그의마라톤 행로가 우승 아니면 신기록의 찬란한 행진으로 수놓아져 있다는 점이다.그러나 그같은 표면적 성과만으론 부족하다.더욱더값진 것은 그가 장외(場外)에서의「자신과의 싸움」조차 훌륭하게극복해 왔다는데 있다.올림픽뒤의 심리적 부담감,엎친 데 덮친 격의 발바닥 수술과 그에 따른 은퇴선언등 실의(失意)와 좌절을딛고 일어선 그의 의지가 이번 쾌거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다.남은 그의 마라톤 인생을 화려하게 마감할 수 있도록 모두가 합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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