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미소 … 웃음 … 취재진 둘러보며 "와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그래픽 크게보기

16일 한국으로 송환된 김경준씨가 서울중앙지검에 들어가기에 앞서 취재진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변선구 기자]

16일 오후 6시50분 인천국제공항 8번 게이트. 주가 조작과 횡령으로 384억원을 챙겨 미국으로 도피한 지 5년11개월 만에 김경준(41)씨가 다시 한국 땅에 모습을 드러냈다. 13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한 기색을 간간이 보였지만 시종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김씨는 양쪽에서 팔짱을 낀 검찰 수사관에 이끌려 게이트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출구에서 대기 중이던 수십 명의 취재진을 보자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호송팀과 나란히 서서 취재진의 사진 촬영에 응하는 동안에는 정면을 응시하며 연달아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묵묵히 받아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흰색 와이셔츠에 짙은 회색 양복을 입은 김씨는 수갑을 찬 손을 기내용 담요로 가린 채 30여 초간 사진 촬영에 응했다. 그동안 언론에 등장했던 6년 전의 사진과 마찬가지로 짧은 머리칼은 모두 뒤로 빗어 넘긴 모습이었다. 공항에는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 수십 명이 몰려 취재 경쟁을 벌였지만 질의 응답 없이 사진 촬영만 해달라는 검찰의 부탁에 따라 김씨를 둘러싼 호송팀과 취재진 사이의 몸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어 8명의 호송팀원과 함께 계류장으로 내려가 대기 중이던 차량을 타고 곧장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떠났다.

오후 7시50분 서울중앙지검 로비. 김씨는 "일부러 이때 온 거 아니에요. 민사소송 끝나서 온 거예요"라고 취재진에 입을 열었다. 꼭 한마디는 해야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뒤로 돌려 외치다시피 한 말이다. 조사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이었다. 한국어가 서툰 듯 다소 어눌한 말투였지만 발음은 비교적 분명했다.

그의 말은 일부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대선을 겨냥한 기획 입국'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그가 언급한 민사소송은 ㈜다스의 투자금 반환 소송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스는 김씨에게서 투자금 190억원 중 140억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고, 김씨는 8월에 승소했다. 그는 앞서 중앙지검 청사 현관 앞에서 승합차에서 내린 뒤 주위를 둘러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와우"라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대기하고 있던 150여 명의 언론사 취재진이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자 나온 반응이었다. 자신에게 쏟아진 폭발적 관심에 놀라면서도 즐기는 듯 줄곧 웃는 모습이었다.

그는 포토라인에 잠시 선 상태에서 "한마디 하고 가도 될까요"라며 팔짱을 낀 수사관에 물었지만 수사관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묵묵히 걸어 들어갔다. 김씨는 중앙지검 10층의 조사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 식사를 했다. 메뉴는 불고기 백반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차분하게 식사를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변호를 맡은 박수종(37.사시 36회) 변호사를 만난 뒤 검찰의 조사에 응했다. 검찰은 김씨를 이날 밤 늦게까지 조사했지만 밤샘 조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검사는 "밤 12시 넘어서 계속 조사를 하려면 본인과 인권담당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입국하던 때 민주연대21과 엠비(MB)지킴이 회원을 포함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지지자 150여 명은 인천공항 입국장 로비에서 "김경준은 사기꾼"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과 10여m 떨어진 거리에서는 여성유권자모임 회원 20여 명이 "이명박 후보 사퇴하라"는 구호를 외쳐대며 반대 목소리를 냈으며,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 등 진보단체 회원 30여 명도 플래카드를 들고서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박성우.최선욱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