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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24년 만에 親서방 복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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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리비아의 친(親)서방권으로의 복귀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 외교관들이 24년 만에 리비아로 복귀한 데 이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10일 리비아를 방문,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와 정상회담을 열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곧 카다피 원수를 만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대량살상무기(WMD) 포기 선언을 통해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려는 리비아와 이라크전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 정보 왜곡으로 수세에 몰린 미.영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양팔 벌린 리비아=지난해 9월 유엔의 대(對)리비아 경제제재가 해제되자 리비아는 서방과의 관계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모하메드 압두라만 샬감 리비아 외무장관은 10일 영국을 방문했다. 샬감 외무장관은 카다피의 친서를 블레어 총리에게 전달하고 영국.리비아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달 미 상원 대표단이 리비아를 방문한 뒤 미 외교관들도 트리폴리에 복귀했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10일 "미 외교관이 트리폴리에 체류하면서 대량살상무기 제거작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는 또 "1980년 이후 벨기에가 리비아 내 미국의 이익을 대표해 왔지만 트리폴리에 외교관들을 상주시킬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6일 런던 주재 미 대사관도 미국인들의 리비아 여행을 곧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과 리비아는 2월부터 런던에서 미국-리비아 관계개선 회담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미국 은행에 동결된 10억달러 상당의 리비아 자산 동결 해제와 함께 테러국가 해제 문제를 다룬다. 미국의 석유 업체들도 리비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탈리아도 발빠르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10일 리비아를 방문한 것은 리비아의 최대 교역국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관측된다.

이탈리아는 고품질인 리비아산 원유 수입과 경제협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심기 불편한 아랍국들=하루 아침에 반미(反美)에서 친미(親美)로 돌아선 리비아의 변신에 주변 아랍국들은 심기가 편치 않다.

이집트를 방문 중인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아랍연맹 사무총장을 만나 "아랍연맹이 유럽연합(EU)과 유사한 '아랍연합'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아랍연맹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친서방으로 돌아선 리비아를 겨냥한 간접적인 비판이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어 일간 알쿠드스 알아라비도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한 미국과 영국이 '리비아 카드'를 이용해 전쟁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아랍 언론의 주장에 리비아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리비아는 대량살상무기 포기가 이라크 전쟁과는 무관한 사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카다피의 아들로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사이프 알이슬람 카다피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 계획을 이라크 전쟁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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