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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펜화기행] 스님과 ‘중선생’ 금강산서 손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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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금강산 신계사와 집선연봉, 종이에 먹펜, 43X60cm, 2007

휴전선을 넘어 금강산에서 신계사(神溪寺)를 만났습니다. 6·25전쟁으로 삼층탑 하나만 남아 있던 폐허에 13개 전각이 복원되어 옛 대찰의 영화가 아이맥스 화면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절 앞으로 소나무 군락이 천만 병사로 도열하였고, 그 너머로 금강산 집선연봉(集仙連峯)이 병풍처럼 장대하게 둘러섰습니다. 이처럼 기막힌 구도를 만나는 기회가 펜화가의 일생에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집선연봉과 여러 건물의 세밀한 묘사를 위하여 화폭을 넓게 잡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늘다는 펜촉을 사포에 갈아가며 연봉 하나하나와 기와 한 장까지 그렸습니다. 9월 18일 금강산에서 돌아와 달포를 그렸으니 다른 펜화보다 서너 배 공력이 든 셈입니다. 펜촉 60여 개를 갈아가며 대략 200만 번이 넘는 펜선을 긋는 동안 집선연봉의 기운이 함께하여 피곤을 잊었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환희심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04년 4월 첫 삽을 뜬 뒤 4년 만에 이처럼 많은 당우를 중창한 사례는 2000년 한국 불교 역사에 또 하나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더욱이 남북이 힘을 합친 불사구요. 이처럼 큰 공사를 남측 조계종단에서 도감(都監)으로 파견한 제정스님 혼자 총감독을 하였습니다. 북측 군사지역이라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을 해가며 온갖 난관을 해결한 대단한 스님입니다.

 신라 법흥왕 6년(519년) 보운(普雲)스님이 창건하여 효봉(曉峰) 한암(漢岩) 큰스님이 수행하였던 신계사를 이제 다시 볼 수 있게 됐으나 그곳서 남측 ‘스님’을 만나게 될지 북측 ‘중선생’을 보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창을 시작할 때 완공 후 관리 합의가 없었답니다. 큰스님의 인도로 여법하게 예불을 들이고 싶은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북측 불자와 함께라면 더 좋겠지요.

김영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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