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첫 金에 가슴쥔 李相均 총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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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역시 후배들이 나를 돕는구나.』 본부석 한구석에서 후배의 첫 금메달을 지켜본 이상균(李相均.63)한국선수단총감독의 노안(老眼)에 뿌연 안개가 서렸다.
올해 선수촌장을 맡은 李총감독은 56년 멜버른올림픽(4위)에출전한 이후 40여년간 레슬링 외길을 걸어온 레슬링人.현재 태릉선수촌장과 레슬링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평생 스포츠로 단련돼 평소 건강 걱정이 없던 李총감독은 최근얼굴이 몰라보게 야위었다.아시안게임 본경기가 시작된지 3일이 지났으나 그토록 기다리던 금메달 소식은 감감하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첫날 펜싱에서『하나쯤 따겠지』하던 기대가 깨끗이 무산됐고 둘쨋날에도 여자펜싱에서 결승에 올라 만사 제치고 달려 갔으나 역시 헛수고였다.
李총감독이나 한국선수단의 임원들은 겉으로 태연한 척 했으나 날이 갈수록 불안해졌고 5일 아침엔 입안이 까칠할 정도였다.
특히 이날 李총감독은 혹시나 하던 승마.여자역도등이 저조한 상태여서 더욱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이제 남은 건 레슬링.『레슬링은 나의 천직이었고 거기서 만은꼭 금을 따낼 것』이란 믿음뿐이었다.
그동안 레슬링은 국제대회때마다 첫 금메달을 따거나 대량으로 메달을 건져올려 「메달밭」이란 별명까지 들었다.88년 서울올림픽때 김영남(金永南.코치)이 첫 금메달을 따냈고 90년 베이징(北京)아시안게임에서는 무려 11개의 금메달을 휩 쓸어 한국선수단의 사기를 한껏 드높였었다.
또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박장순(朴章洵).안한봉(安漢奉)이금메달을 따 한국이 7위를 하는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원로체육인의 고민은 마침내 어린 후배 심권호(沈權虎)에 의해 해결됐다. 李총감독은 금메달을 딴 것도 기쁘지만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온 후배가 한국선수단의 숨통을 틔웠다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러워 남몰래 울고 있는 것이다.
[히로시마=權五仲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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