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포인트 생도들 초등학교 가는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맥아더.아이젠하워 같은 세계적 군사 지도자들을 배출한 미국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 이곳 사관 생도들이 재학 중에 초등학교에 가 그들을 상대로 놀이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을 이수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리더십을 키우는 데 필수라고 간주되는 어엿한 훈련 프로그램의 하나다. "지휘관의 품성과 어린이 놀이 지도가 대체 무슨 상관인가 여길지 모르지만 여기엔 웨스트포인트만의 독특한 리더십 육성 노하우가 있다"는 게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이다.

◆놀이로 익히는 리더십=철부지 어린이들이, 그것도 무리 지어 놀면 그야말로 정신없고 산만하다. 생도들은 천방지축인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며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체득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런 차별화 교육 비법들을 예로 들며 웨스트포인트를 국내 기업이 본받을 만한 '리더 양성소'라고 평했다. 13일 내놓은 '미 육사에서 배워라'라는 보고서에서다.

실제로 졸업 생도 중 상당수는 쟁쟁한 글로벌 기업으로 진출해 최고경영자(CEO)로 맹활약 중이다. 미 최대 인터넷 접속 사업자인 AOL의 창업자 제임스 킴지, 전자상거래 업체인 커머스 원의 마크 호프먼이 그렇다.

보고서는 "웨스트포인트 특유의 리더십 교육이 최강의 지도자를 육성하는 키워드가 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교육은 'Be(겸손 등 윤리적 가치)-Know(지식)-Do(실행)'의 교육철학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Be'는 어느 교육기관보다 강조된다. 생도들은 웨스트포인트에 들어온 뒤 장장 47개월간 겸손과 자기 희생의 미덕을 배운다.

◆창의성이 생명=리더십 교육 과정 역시 눈길을 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원칙은 창의성이다. 이에 따라 목표는 부여하되 정해진 방법은 없는 프로그램을 따른다. 상명하복을 생명처럼 여기는 일반 군 조직과 사뭇 다르다. 전투 중엔 일일이 물어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전투 상황에서 오직 '나 홀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인재를 키우는 데는 창의성밖에 없다는 것을 간파한 교육법이라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기업 경영이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되는 상황에서 기업가처럼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빠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웨스트포인트의 리더 양성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표재용 기자

◆웨스트포인트=1802년 창설된 4년제 미 육군사관학교(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뉴욕주 허드슨 강의 서쪽 기슭에 위치했다고 하여 웨스트포인트(West Point)란 별칭이 붙었다. 남북전쟁 당시 로버트 리 장군을 비롯해 아이젠하워.패튼 장군과 1차 걸프전을 지휘한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 등 숱한 군사 지도자와 경영인, 대학 총장 등을 배출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