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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젊은 노인' 일자리 주는 게 고령화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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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인복지 정책은 선거에서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는 대표적인 정치 상품이다. 다수가 혜택을 보는 데다 특정 집단이 반대할 위험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대권 후보들이 내놓은 노인정책도 일단 표부터 얻고 보자는 득표 전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초노령연금을 대폭 늘리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후보는 현재 월 8만여원에서 월 30만원으로, 권영길 후보는 현재보다 3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정동영 후보는 치매가족에게 세제 혜택과 월 10만원의 약값을 보조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초노령연금은 지금대로라도 2015년이 되면 5조원이 소요돼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감세를 주장하는 보수정당 후보가 천문학적 돈이 드는 복지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나 보수·진보 정당 간에 이념적·정책적 차별성을 찾을 수 없는 점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한국은 더 이상 젊은 국가가 아니다. 압축적 경제성장과 압축적 고령화를 동시에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고령화의 재앙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 노령화는 단순한 인구구조의 변화뿐 아니라 한국의 미래와 국민경제의 틀을 바꿔 놓는 엄청난 변화를 불러온다. 사회의 성장동력을 한순간에 무력화할 수도 있다.

 노인대책이 단순히 노인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2005년 현재 전체 인구의 9.1%에 불과한 노인인구는 2050년이면 38.2%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중은 현재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인구의 절반이 노인과 아동을 부양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노인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정책이 고령화 정책의 핵심이다.

 노인들도 언제까지나 일하고 싶어 한다. 정부가 던져주는 몇 푼 안 되는 용돈 연금에 기대거나 자식에게 얹혀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 노인들은 젊다. ‘젊은 노인’들이 갖고 있는 경륜과 능력을 사회가 활용하면 노동력 부족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개개인도 인생 후반을 즐겁고 보람차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은 이미 1967년부터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했고 일본도 지난해 법령 개정을 통해 현재 60세인 정년을 2013년까지 65세가 되도록 연장했다. 또한 이미 임금피크제, 퇴직자 재고용 같은 평생고용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도 건강과 일할 능력만 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제대로 된 노인대책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복지비로 재원이 고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지부진한 연금개혁을 단행하고 방만한 건강보험제도도 손봐야 한다. 장수 국가 일본이 내년부터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건강보험료를 징수하는 것도 다 이 같은 차원이다. 노인표 한 표 얻겠다고 현실성 없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노인들을 한 번 더 화나게 하는 일이자 나라를 쇠망의 길로 이끄는 일임을 후보들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