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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국제 금융시장 새 큰손 … 3국3색 한·중·일 투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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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본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둔 전업주부 오카모토 마유미(42·여). 그는 지난해부터 은행 예금까지 돈을 빼내 해외 채권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에선 연이자가 고작 1% 정도인데 뉴질랜드·호주의 채권 이자율은 연 7%가 넘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웃 주부들과 투자클럽을 만들어 인터넷 외환거래에도 뛰어들었다.

한국·일본·중국의 투자자들이 국제 금융시장을 휘젓는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일본의 주부들은 해외 투자에 열중하고, 중국 개인투자자들은 상하이 증시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전 세계 투자자를 울리고 웃긴다. 굿모닝신한증권은 “한국의 ‘강남 아줌마’,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 중국의 ‘왕서방’이 국제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틀어쥔 주인공으로 부상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 뺨치는 개인투자자=일본에서 해외 투자를 주도하는 계층은 ‘와타나베 부인’들이다. 와타나베는 우리나라의 김(金)씨처럼 일본의 흔한 성(姓)으로 ‘해외 투자에 나선 일본의 전업주부’를 뜻하는 신조어. 오카모토처럼 엔화를 굴리는 ‘와타나베 부인’들의 거래대금은 지난해만 200조 엔(약 160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도쿄 외환시장 거래액의 20~30%에 달하는 규모다. 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고금리의 해외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엔캐리트레이드’의 주역이기도 하다.

‘강남 아줌마’는 두둑한 여유자금으로 주로 해외 펀드·리츠 등에 투자하는 한국의 전업주부 투자자를 상징하는 단어다.

올 들어 강남 아줌마 부대는 중국·동남아 금융시장의 ‘큰손’으로 주목받고 있다. 웬만한 해외 투자상품을 줄줄 꿰고, ‘돈이 될 것 같다’ 싶으면 ‘몰빵’할 만큼 배짱도 두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7조6900억원에 머물던 해외 주식형 펀드 수탁액은 13일 현재 43조1800억원으로 다섯 배 넘게 불어났다. 중국·인도·러시아·베트남·남미 등 ‘고수익-고위험’의 신흥 성장국 투자가 주를 이룬다.

중국의 주식 광풍 주인공은 ‘왕서방’(중국의 개인투자자)이다. 일반 직장인은 물론 주식을 잘 모르는 주부·학생, 심지어 스님·농민들까지 증시에 뛰어들 정도다. 주식 계좌 수는 이미 1억 개를 돌파했다. 이런 개인투자자들의 묻지마 투자에 힘입어 페트로차이나는 상장하자마자 시가총액 1조800달러로 세계 1위로 부상했다. 5월 중국 정부의 긴축 발표에 놀란 왕서방들이 주식을 투매하자 세계 증시가 중국발 충격에 홍역을 치렀다. 8월에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세계 증시가 곤두박질했지만 왕서방들이 상하이 주가를 끌어올리면서 안전판 역할을 해냈다.

◆커지는 영향력=세계 금융시장에서 동아시아 개인투자자들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세계 금융의 평화는 와타나베 부인들에게 달렸다”(이코노미스트) 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왕서방들도 상하이 증시를 통해 세계 증시를 좌우하는 괴력을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의 오인석 이사는 “해외 펀드 투자가 팽창하면서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위상과 경쟁력이 강해지고 있다”며 “외국의 대형 기관투자가들도 한국 펀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라고 말했다. 앞으로 한·중·일 개인투자자들의 입김은 더 세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강남 아줌마와 와타나베 부인이 해외 투자의 단맛에 눈을 뜬 데다 중국도 머지않아 왕 서방의 해외 투자를 허용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조중재 연구원은 “한·중·일 3국의 개인투자자들이 세계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동아시아 캐리 트레이드’ 시대도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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