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요즘 뜨는 '파티 플래너' 임정선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진탕 술만 먹는 직장 회식, 늘 같은 얼굴만 마주하는 동창회….이런 모임에 질렸다면 대신 파티에 나와 보라고 꼬드기는 여자가 있다.

오는 21일로 총 4백회의 파티를 치러내는 회원제 파티 전문회사 '클럽 프렌즈'의 임정선(林廷宣.33) 이사. 요즘 20~30대가 선호하는 직종으로 떠오른 이른바 '파티 플래너'의 대표 주자다.

"파티는 단지 먹고 노는 행사가 아니에요. 학연.지연 등 연고는 없어도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한 사람들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죠. 하지만 서구와는 달리 끼리끼리 노는 데만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파티에서 낯선 이들과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게 쉽지 않아요."

1997년 초 문을 연 '클럽 프렌즈'는 공무원.사업가.은행원 등 각계 각층에 7만여명의 회원(정회원+인터넷 회원)을 확보, 이들에게 주 3회씩 다양한 테마의 파티를 제공하고 있다.

林씨는 파티 장소를 예약하고 음악.조명과 음식 등을 준비하는 일 외에 파티 현장을 분주히 오가며 서로 말이 통할 듯한 이들끼리 연결해주는 윤활유 역할까지 해낸다.

"흔히 생각하듯 이성 파트너를 찾겠다는 생각만으로 오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진지한 대화 상대를 찾는 사람, 결혼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부부 등 파티에 오는 목적도 제각각이죠."

회원들은 이를 위해 적지 않은 연회비(45만원)에다 자신이 신청한 파티의 참가비(5만~6만원)까지 지불한다고 한다. 단지 사교를 위한 비용치곤 과하지 않으냐고 하자 林씨는 "요즘 젊은 세대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한 뒤 6년간 삼성물산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林씨가 파티 플래너로 변신한 것은 '클럽 프렌즈'의 대표이기도 한 남편 하승호(河昇澔.32)씨와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교 1학년 때 소개팅에서 만나 몇달간 사귀다 林씨가 '예나 지금이나 엄청 튀는' 河씨의 성격에 거리감을 느끼는 바람에 헤어졌던 사이.

그로부터 9년 후 '재미있는 파티가 있다'는 직장 동료를 따라 들어선 파티장에서 주최자인 河씨를 다시 만났고, "옷이 아니라 파티를 디자인해 보라"는 그의 권유를 받아들여 99년 같은 길로 들어섰다.

"함께 새로운 문화를 개척한다는 동지 의식이 열정으로 변해 1년 후쯤 결혼했죠. 하지만 며칠 뒤 열릴 파티를 준비하느라 남들 다 하는 결혼사진 촬영도, 신혼여행도 포기해야 했어요. 지금도 틈날 때마다 파티 얘기만 하다 보니 마치 파티랑 결혼한 기분이 들 정도랍니다."

林씨는 네살배기 아들과 놀아줄 시간도 없고, 매주 토요일 파티를 치르느라 일요일 새벽 서너시에 퇴근해야 한다며 "파티 플래너는 재미있겠다는 환상만으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글=신예리, 사진=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