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인물탐구>"작별"서 신세대 둘째딸役 유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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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아버지의 외도.잇따른 가정의 위기에 신세대 자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야,어른끼리 사고쳤으면 어른답게 해결해야지.누구옆구리를 건드려.우리 아버질 위해서라면 난 얼마든지 독한 맘 먹을 수 있어.이에는 이,눈에는 눈이야.』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유림(유호정扮)의 눈에 독기가 오른다.SBS드라마『작별』에서 강신욱박사(한진희扮)의 둘째딸 유림은「아버지의 여자」춘희(임예진扮)가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자 그야말로 함무라비식 대응을 한다.카키색 멜빵바지 차 림의 유림은 야구방망이를 하나 사고 약국에 들러 우황청심환을 한알 삼킨다.모자를 뒤집어 쓰고담배 한모금을 들이마신 뒤 춘희의 아파트에 들어선 그녀는 도자기.액자.거울등을 닥치는 대로 깨부수며「평온한 가정의 침입자」를 응징(?)한다 .
『너,너,이거 무단침입에 기물파손이야.』『너 이판사판이나 나이판사판이나 피장파장이야.당신이 우리집 와서 한 걸 그대로 하는 건데 뭘 그래.』 당황한 춘희가 말할 틈새도 없이 유림은 방망이를 쉬지 않는다.그리곤 황급히 귀가한 그녀는 춘희 의「반격」에 대비해 문가에 방망이를 숨겨 둔다.
드라마의 오랜 단골소재였던「아버지의 불륜」에는 몇가지의 고정관념이 뒤따랐었다.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어머니.어머니의 고뇌를 동정하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키워가는 자녀.그리고「아버지의 외도」를 삭이지 못해 밤새 눈물로 뒤척이는 딸.때론 평생 아버지와의 사이에 벽을 쳐놓기도 했던 그같은 극중의 틀을 유림의 야구방망이는 과감히 깨뜨려 버린다.발랄한 신세대 유림은크게 고민할 것도 없이「어른들의 한번 사고」로 아버지의 외도를단순화해 버린다.한번 외도로 아버 지를 소유하려는 여자 춘희는가족의 행복을 앗아가려는「사이코」요「병원에 집어넣어야 할」(극중 유림의 대사) 적(敵)일 뿐이다.『50대의 아버지는 왜 외도를 했을까』『결혼과 부부는 무엇일까』등 원초적 고민은 삭제되고 삶은 유림에게「지 켜야할 행복」과 불행으로 이분화될 뿐이다.단순함을 좋아하고 자기 것에 집착해 때론 이기적이기도 한 신세대를 아버지의 불륜에 대입시킨「유림」은 눈에 튀는 파격으로 세태의 변화를 상징해주고 있는 셈이다.
〈崔 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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