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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대통령 될 사람, 온난화 대책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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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승수 유엔 기후변화특사는 “온실가스 배출 세계 10위인 한국도 이제는 기후변화 문제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형수 기자]

한승수(70)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유엔 기후변화특사 자격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가 특사가 된 것은 5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요즘 한 특사의 일정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정도다. 17일엔 스페인 발렌시아의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 총회에, 23일엔 태국 방콕의 신문 네트워크 회의에 참석한다. 2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위원회(EC) 회의에서는 반 총장을 대신해 기조연설을 한다. 다음달 3일엔 일본 벳푸의 아시아·태평양 물 포럼에 참석하고, 12일엔 인도네시아 발리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도 참가한다. 한 특사는 “국제문제에 책임지는 나라가 돼야 국격(國格)이 높아진다”며 한국도 기후변화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6일 서울 광화문 인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기후변화특사의 역할과 온실가스 감축 협상을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들어봤다.

-기후변화특사를 맡게 된 이유는.

“기후변화 문제는 환경문제를 넘어서는 중요한 국제정치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구온난화가 과학적으로 증명돼도 결국은 정치 지도자들이 감축 목표를 결정해야 한다. 그동안 기후변화 문제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서 다뤘는데, 4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인 영국의 요구로 안보리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토의했다. 반기문 사무총장과의 개인적인 인연도 작용했다. 2001년 유엔총회 의장을 할 때 반 총장이 의장 비서실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1993년 주미대사 때는 반 총장이 정무공사로, 외교부 장관 때는 차관으로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안다.”

-기후변화특사로 어떤 일을 했나.

“7월 31일 유엔 기후변화 총회 때 연설을 했다. 9월 24일 유엔총회 때 기후변화 고위급 회의도 준비했다. 이 회의에 각국 정상에게 참석을 요청하는 일을 했다. 중국·일본·인도·파키스탄 등을 방문했다. 그 결과 9월 고위급 회의에 전 세계 80개국 정상을 비롯해 160개국의 고위 정부 인사들이 참가했다. 고위급 회의에서는 네 가지 부문별로 나눠 회의가 열렸는데 ‘재정’ 부문에서 좌장을 맡아 토의를 진행했다.”

-지구온난화가 어느 정도 심각한가.

“온난화는 균일적이고,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균일하지 않고 급격하고, 파괴적으로 나타난다. 미국 하버드대의 존 홀랜드 교수는 ‘온난화 양극화’를 강조하고 있다. 선진국은 물적·기술적·인적 자원이 풍부해 기후변화에 잘 적응하지만 후진국은 적응력이 없어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기온이 올라가면 해수면이 올라가고 몰디브·솔로몬제도·투발루 같은 작은 도서 국가들은 사라질 수도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가 크게 엇갈린다. 유엔이라 해도 이를 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영국과 같은 개별 국가나 유럽연합(EU)이 감축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기후변화 문제는 유엔이 중심이 돼야 실마리가 풀린다. 반 사무총장이 특사를 임명한 것도 정부 간 협상을 잘 진행하기 위해서다. 유엔환경계획(UNEP)이나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UNFCCC) 같은 유엔의 기존 산하 기구는 실무를 담당하고, 부족한 면은 특사가 메우게 된다. 특사는 사무총장의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2012년 교토의정서가 정한 감축 기간이 끝난다. 2013년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

“교토의정서에 따라 EU 국가나 일본 등 ‘기후변화협약 부속서1 국가’들은 2008~2012년에 1990년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13년 이후 감축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는 2009년 말까지 이 협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몇 달 허송세월하면 2008년이 그냥 지나갈 수도 있어 발리 회의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는.

“선진국이 산업혁명 후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개발도상국도 (온실가스 배출의) 출발은 늦었지만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이 이산화탄소 배출 1위였으나, 올해부터는 중국이 최고가 된 것이 좋은 예다. 그래서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이라는 원칙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기 때문에 감축 협상이 시작되면 국제적 압력이 심해질 것이다. 정부가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도망간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감축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일본은 5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90년 대비 절반으로 줄인다는 감축안을 제시했다. EU는 30~5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청정기술 개발로 이를 돌파해야 한다. 경제 원조와 산업협력을 통해 북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도록 하고, 줄여서 얻은 배출권을 한국이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출신의 반 사무총장 때문에 한국 정부가 감축 목표를 정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 아닌가.

“반 총장은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지, 한국의 유엔 사무총장이 아니다. 한국 정책과 연계할 필요는 없다. 다만 반 총장이 조그만 비행기를 타는 위험을 무릅쓰고 빙산이 녹는 남극을 찾아가면서까지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는 기후변화 문제를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어젠다로 정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아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언론에서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작성할 때 기후변화 문제 항목을 꼭 넣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될 사람이 인류 공동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의 재임 중 가장 큰 국제적 이슈는 기후변화 문제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있어야 한다.”

-정부와 국민·기업들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편안하게 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식들, 손자·손녀에게 어떤 환경을 물려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 나라가 배출한 온실가스는 그 나라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그 영향을 다시 우리가 받게 된다. 국제협력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고, 책임 있는 국가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 출신인 반 총장이 인류 장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를 높이 평가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한승수 특사는
1936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영국 요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88년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사회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그는 세계은행 경제자문, 유엔 아·태경제사회위원회(ESCAP) 경제자문역을 맡으며 유엔과 인연을 맺었다. 88~90년에는 상공부 장관, 94~95년엔 대통령비서실장을, 2001~2002년에는 외교통상부 장관과 유엔총회 의장을 지냈다. 13,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5년부터 올여름까지 2014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CO2 배출량 15년 새 2배로 늘어 감축 압력 커질 듯

교토의정서에서 정한 38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기간은 내년에 시작돼 5년 뒤인 2012년 끝난다. 이 기간에 1990년 배출량보다 5.2%를 줄여야 한다.

2013년 이후에는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지 정해진 것이 없다. 다음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릴 예정인 기후변화협약 제13차 당사국 총회는 2013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논의하는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교토의정서를 채택한 1997년 한국에 대한 감축 압력은 미미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감축 논의를 시작하면 한국에 대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요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이미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한국의 이산화탄소 양은 2005년 기준으로 4억4891만t이라고 집계했다. 세계 10위에 해당하는 양이다. 선진국이 90년의 배출량을 감축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한국은 1990년 배출량 2억2700만t과 비교했을 때 두 배로 늘었다.

벌써 유럽연합(EU)은 한국에 감축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온실가스 감축을 하지 않는 나라의 제품에 대해서는 무거운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정부도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 9월 유엔에서 열린 고위급 회담에 참석하고 돌아온 한덕수 국무총리가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정부는 이달 말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방안을 담은 ‘제4차 기후변화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환경부 고윤화 대기보전국장은 “내년 상반기께 산업계와의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정할 계획”이라며 “그러나 국제 협상을 위해 감축 목표를 공개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만난 사람=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기후변화특사=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5월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기 위해 임명했다. 한승수 전 장관과 그로 할렘 브룬틀란 노르웨이 전 총리, 리카르도 라고스 에스코바르 전 칠레 대통령 등 세 명이다. 세계 각국을 방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반 총장을 대신해 기후변화 관련 각종 국제회의를 주재하기도 한다. 1년간 보수가 1달러가 전부인 명예직이다.

◆교토의정서=1997년 미국·일본·영국을 포함한 38개 선진국이 일본 교토에 모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로 한 약속이다. 나라마다 줄이는 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2008~2012년 사이 5년 동안 평균적으로 1990년의 95% 수준에 맞추기로 했다. 미국과 호주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온실가스=지구표면에 도달한 태양열이 우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대기오염물질을 말한다. 석탄·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2), 소가 트림할 때나 쓰레기 매립지에서 나오는 메탄(CH4)이 대표적이다. 온실의 유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